▷백낙청 씨의 명석함은 학생 때부터 유명했다. 경기고 3학년 때 미국 뉴욕 세계고등학생토론회에 한국 대표로 참가한 사실이 당시 언론에 보도됐다. 1959년 6월 12일자 동아일보에는 그가 미국 브라운대 영문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하면서 전체 졸업생을 대표한 연설을 해 한국 학생의 우수함을 과시했다는 소식이 사회면 톱기사로 실렸다. 그는 하버드대 박사학위 과정 중 귀국해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백 씨는 1966년 ‘창작과 비평(창비)’을 창간했다. 창비는 ‘문학과 지성’과 더불어 문예지의 두 축을 이뤘다. 그는 분단을 주제로 삼은 문학을 높이 평가했다. 그 배경 이론으로 한국 사회의 온갖 왜곡을 초래하는 원인은 분단이라는 ‘분단모순론’을 들고 나왔다. 남북이 팽팽한 체제 대결을 벌일 때만 해도 분단모순론은 일견 타당해 보였다. 하지만 공산주의가 붕괴하자 분단모순론은 길을 잃었다. 그는 새로 ‘이중극복론’을 들고 나왔다. 분단을 극복해 통일로 가야 하지만 통일은 동시에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하는 이중의 극복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