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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기자의 문학뜨락]‘오베라는 남자’의 매력

입력 | 2015-11-25 03:00:00


‘오베라는 남자’에 국내 출판사들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듣도 보도 못한 신인 작가, 심지어 그 작가의 첫 작품, 국내엔 생소한 북유럽 소설. 출판사 간 판권 경쟁이 없는 건 당연해 보였다. 선인세 5000유로(약 616만 원)에 판권을 사들인 다산책방은 번역한 원고를 서점 구매담당자(MD)들에게 보여줬다. “이건 되겠다”는 반응이 왔다. 5월 책이 나왔을 무렵 출판사가 예상한 판매부수는 5만 부였다.

‘오베라는 남자’가 20만 부를 넘었다. 스웨덴 작가 프레드릭 배크만의 장편이다. 이변이 없는 한 올해 가장 많이 팔린 소설로 기록될 분위기다. 외국소설 경쟁작이 많지 않았던 상황에서 신경숙 표절 논란으로 한국문학이 침체되면서 쏠림 현상이 두드러졌다는 분석도 있다. 그렇지만 비슷한 조건 혹은 명성이 적잖은 작품도 나왔던 터에 유독 ‘오베라는 남자’가 사랑받은 이유는 뭘까.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캐릭터의 힘’을 꼽는다. 주인공 오베는 겉으로 봐선 어지간하면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까칠한 남자다. 그는 아이패드에 왜 키보드가 없느냐며 분개하고, 디자인이고 기능이고 따지지 않고 자기 나라 차라는 이유로 사브를 고집한다. 고집불통에 매사 툴툴대는 이 남자에겐 그러나 반전 매력이 있다. 그는 옆집에 이사 온 아랍 이민자들을 꺼리지 않고 그들과 어울리고, 동성애에 동의하진 않지만 집에서 쫓겨난 게이 소년을 품어준다. “본받고 싶은 어른이 없는 현실에서 소설 속 오베는 신뢰와 믿음을 주는 어른의 모습”이라는 게 장 대표의 분석이다.

흥미로운 건 이 소설의 구매율 분석이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이 책의 독자는 30대가 가장 많았고 20대 독자가 뒤를 이었으며 40대가 다음이었다. 젊은 독자들을 끌었다는 것이다. 출판기획자 이홍 씨는 ‘오베라는 남자’의 독자층 분석에 대해 “나이 든 캐릭터는 나이 든 독자에게 호소할 것이라는 편견을 뒤집는 것”이라면서 “이 책의 주요 독자인 젊은이들이 안정적이면서도 따뜻하고 원칙을 지킬 줄 아는 인물을 원하는 것으로도 보인다”고 밝혔다. 보수적으로 보이지만 삶의 가치를 선명하게 제시하는 인물이 매력적으로 비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인터넷 서점의 독자 리뷰에는 ‘읽을수록 오베라는 남자에게 정이 든다’ ‘은근한 반전과 두근거림이 있다’는 등 오베의 매력을 짚는 내용이 많다.

‘오베라는 남자’가 문학성이 높은 소설은 아니다. 이야기성이 강하거나 구조가 복잡한 게 아니라 사소한 에피소드들로 승부한다. 그 에피소드들은 코믹하면서도 가슴 찡한 사연들로 이뤄졌다. 원서의 표지 이미지는 머리 희끗한 남자의 뒷모습이었던 것이 국내에선 인상 팍 쓴 사내의 일러스트로 바뀌었다. 일러스트레이터의 첫 작품이었는데, 유머 담긴 이미지도 책의 인기에 한몫했다는 후문이다. 베스트셀러에는 대개 사회적 함의가 있다. ‘오베라는 남자’의 열풍은 이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면서 기대고 싶은 어른을 찾으려는 독자들의 바람, 팍팍한 현실을 살아가면서 소소한 감동과 웃음을 통해 기쁨을 찾으려는 이들의 욕구가 통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