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한 시련의 겨울을 피하지 말고 기꺼이 즐겨야 행복한 전원생활이 가능하다. 첫눈이 내린 11월 전원의 모습.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
그렇다고 흰 눈이 늘 낭만과 즐거움을 선물하는 것은 아니다. 천막창고나 차고, 비닐하우스, 집 지붕 위로 한 뼘, 두 뼘, 세 뼘 자꾸 쌓이면 낭만은 이내 사라지고 눈 폭탄에 대한 걱정만 가득 찬다. 눈길 차량 사고는 그중 최악이다.
2010년 11월 27일, 필자 가족은 강원도 홍천 산골에서의 전원생활 첫해 첫겨울에 첫눈을 맞았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하얀 눈꽃송이를 바라보는 그 느낌은 차라리 감격에 가까웠다. 그러나 첫눈이 내리던 바로 그날, 인근 면사무소 소재지에서 볼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차가 쌓인 눈에 미끄러져 전복되는 아찔한 사고를 겪었다. 차는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천만다행으로 필자는 터럭 하나 다치지 않았다. 아내는 그 일을 두고 늘 “천사의 도우심이 있었다”고 말하곤 한다.
전원의 겨울은 엄동설한에다 이런저런 생활의 불편함도 더해진다. 필자는 매년 겨울 따뜻한 집과 창고의 지하나 천장으로 침투하려는 쥐들과 한바탕 전투를 치르곤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해마다 겨울이 되면 강원 산골에는 빈집이 부쩍 늘어난다. 봄 여름 가을의 3색 전원생활을 즐기던 많은 사람들이 겨울 혹한과 강풍, 폭설을 피해 다시 도시로 빠져나간다. 전원 엑소더스 행렬에는 도시와 전원에 따로 집을 두고 주말에만 이용하는 사람들, 요양 온 환자와 가족들, 심지어 전원에 눌러앉은 지 오래된 이들 중 일부도 참여한다. 주인 없이 덩그러니 버려진 채 떨고 있는 산골 둥지는 보기에도 안쓰럽다.
이처럼 전원의 겨울은 혹독한 시련의 계절이다. 하지만 기나긴 동면과 침묵, 인내의 과정을 통해 진정한 쉼과 느림, 그리고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맛볼 수 있는 안식의 계절이기도 하다.
사실 전원의 겨울이야말로 가만히 귀 기울여 보면 봄, 여름, 가을보다 오히려 자연의 소리, 하늘의 소리를 더 잘 듣고 이해할 수 있다.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며 혼자 있는 즐거움도 맛보고, 바람과 눈을 벗 삼아 독서삼매경에도 빠져본다. 폭설이 내리면 산속에서 마을로 내려오는 고라니, 너구리, 꿩과 참새 등은 항상 만나게 되는 자연의 친구다.
전원의 사계절 중 겨울은 그해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1년의 12개월 중 5개월을 차지하기에 이 겨울을 빼놓고선 온전한 전원생활을 말하기 어렵다. 전원의 겨울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도시에서의 편리한 생활습관을 내려놓고 ‘겨울은 겨울답게 살겠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필자 집은 겨울 내내 실내온도를 영상 15도 안팎으로 유지한다. 대신 4인 가족 모두가 내복은 기본이고 모자가 달린 인조 양털과 군인용 내피를 껴입고 생활한다. 때론 침낭에 들어가 잠을 잔다. 이렇게 하면 1년 내내 사용하는 난방유 사용량은 3∼4드럼(1드럼=200L)에 불과하다. 다들 걱정하는 난방비 부담을 크게 덜 수 있다.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 721만 명을 비롯한 많은 도시인들이 새로운 인생 2막을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전원으로 향하고 있다. 인생 2막의 장으로 전원을 선택했다면 시련의 겨울 또한 피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즐기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야 비로소 행복한 전원의 사계절이 완성된다.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