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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방귀희]장애인의 정체성 끌어안는 정치 기대

입력 | 2015-11-25 03:00:00


방귀희 솟대문학 발행인

12월 3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장애인의 날’이다. 유엔이 세계 인구의 15%에 이르는 장애인에게 특별한 지원과 배려가 필요하다고 정한 것이다. 2015년 현재 한국 장애인의 삶을 살펴보면 여전히 장애 때문에 말도 안 되는 차별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장애인 복지가 놀랄 만큼 발전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장애인복지법을 비롯해 교육권, 노동권, 이동권 등을 보장하기 위한 장애인 관련 법률이 12개이고, 심지어 몇 개국밖에 갖고 있지 않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되는 국가로 장애인복지의 기본 틀은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장애인의 실업률은 비장애인의 세 배 가까이 되고 장애인은 버스를 탈 수 없으며 음식점에 들어설 때마다 달갑지 않은 시선을 받는다. 사람들은 장애인을 배려해야 한다는 점은 알고 있지만 ‘불편하신데 우리가 갈게요’식으로 배려를 가장한 격리에 나서 장애인은 사회 전반에 걸쳐 배제되고 있다.

장애인이 우리 사회의 소외계층에 머무는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선택한 것이 ‘정체성의 정치’이다. 자신들의 바꿀 수 없는 특성을 오히려 정치적으로 승인받기 위한 운동이다. 이 정체성의 정치로 선거가 있을 때마다 장애인 집단은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요구했다.

최근 장애인계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장애인 공약 이행 중간평가연대를 결성했고 설문조사를 통해 공약 이행 만족도가 1.94점(5점 만점)이라고 공개했다. 또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은 장애인유권자 정치의식조사 결과 장애인 유권자의 78.5%가 20대 총선에서 투표할 생각이고 3명 중 1명은 아직 지지 정당이 없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장애인은 투표로 자기 의사를 밝히려는 의지가 강하며 보수니 진보니 하는 이념보다는 장애인복지 공약으로 지지를 결정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정체성의 정치를 가장 잘하는 집단이 바로 장애인이다.

그런데 정체성의 정치를 이론화한 악셀 호네트 같은 정치사상가에 의하면 정치적 인정을 통해 사회문화적으로도 인정을 받아야 하는데 아직 한국은 그 수준에 못 미치고 있어서 장애인복지를 위한 제도가 마련됐음에도 불구하고 장애인 당사자들은 사회적 차별과 배제 속에 있는 것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우리 국민의식이 아직 ‘민주적인 마음의 습관’으로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겉모습은 민주적이지만 마음은 비민주적 틀 속에 갇혀있다. 파커 파머가 언급한 민주적인 마음의 습관이란 다양성의 긴장에 친숙해지고 나아가 낯선 사람을 환대하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장애인을 배제하는 것은 장애인이 싫어서가 아니라 낯설음 때문이고 장애를 다양성으로 보지 않고 운명적 낙인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장애인을 환대하는 민주적인 마음의 습관을 지니려면 우선 장애를 하나의 특성으로 인식하고 장애인과 친숙해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지금 당장 승강기 앞에서 장애인을 만나면 먼저 탈 수 있도록 양보하고 장애인 주차구역은 비어 있어도 장애인 몫으로 남겨두는 습관부터 들여야 한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빌 게이츠처럼 돈이 많다면 돈의 가치가 떨어진다. 세상 모든 이들이 김연아처럼 트리플악셀을 할 수 있다면 올림픽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에는 온몸 가운데 오른쪽 손 하나만 사용하는 나 같은 장애인도 있어서 배려해줄 수 있는 대상이 있고 사회적 약자가 있어서 잘 살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내세워 정치권력도 갖게 된다.

정치권력은 상위 1%의 금수저 가족이 아닌 가장 낮은 곳에서 수저조차 없이 태어난 사람들이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다양성의 긴장에 친숙해지는 민주적인 마음의 습관을 갖지 않으면 갈등이 생기고 이는 불만으로 이어져 사회를 불안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세계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되새기고 싶다.

방귀희 솟대문학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