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석 논설위원
반가사유상에 숨은 비밀
이런 배짱과 여유를 21세기 후손은 물려받지 못한 걸까. 최근 발표된 ‘2015 암웨이 글로벌 기업가정신 보고서’에서 한국은 44개국 중 28위에 그쳤다. 창업에 도전하는 기업가정신 지수는 44점으로, 세계 평균(51점), 아시아 평균 수준(64점)에 못 미쳤다. 이유는 한국인 응답자 88%가 답한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 있었다. 그 두려움 속에 ‘파산에 대한 공포’(59%), ‘경제적 위기’(48%)와 함께 ‘가족들의 실망에 대한 걱정’(35%)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얼마 전 EBS에서 방영한 인도 영화 ‘세 얼간이’는 명문 공대를 배경으로 못 말리는 신입생 세 사람이 좌충우돌하며 성장하는 이야기를 닮은 코미디 영화였다. 단 한 번의 실패도 용납하지 않는 교육, 나 자신보다 가족의 실망을 더 겁내는 주인공들 위로 한국의 현실이 겹쳐졌다. 영화 속 총장은 ‘인생은 레이스다. 빨리 달리지 않으면 짓밟히고 만다’며 학생들을 다그친다. 여기에 아버지가 기대하는 공학자가 되기 위해 사진작가의 꿈을 포기한 파르한, 가난한 집안에 대한 부담감으로 신에게 매달리는 라주의 선택은 실패 없는 청춘, 가족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것만 바람직한 삶이냐고 묻는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실패에 대한 두려움’ ‘가족의 실망에 대한 걱정’으로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을 꼽자면 63만여 명의 수험생이 빠질 수 없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 발표를 일주일 앞둔 요즘, 그들의 심정은 불안과 긴장의 가슴앓이를 벗어나기 힘들다. 특히 제 실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 학생이라면 좌절감과 막연히 요행을 바라는 마음 사이에서 오락가락할 것이다. 오래전 대입 국가고시를 치렀을 때 내 심정도 그랬다. 아직 사회생활로 들어서기도 전인 여리고 파릇한 미성년에게 초겨울 첫추위와도 같은 잔혹한 경험부터 시작하게 하는 나라의 교육제도는 정상적인 것일까.
실패와 성공, 한 몸과도 같다
이맘때 주변에서 격려나 위로의 의미로 들려주는 얘기가 초조한 수험생 귀에 들어올 턱이 없다. 그래도 혹시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때라면 이를 받아들이고 다시 도전하는 용기를 갖기를 소망한다. 누구나 불안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니까. ‘너는 실패해도 성공했다.’ 언젠가 책에서 접한 이 말은 이어령 선생이 영화감독인 아들에게 보낸 연하장 문구다. 첫 장편을 연출한 아들에게 힘을 주고자 실패가 성공으로 가는 통과의례임을 일깨워준 것이다. 그러니 일이 어긋났을 때 무릎 꿇지 않고 이를 소중한 경험자산으로 만들려는 의지가 있다면 실패하는 것도 청춘의 특권이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