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어문기자
그러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술의 폐해를 지적한 사람도 많다. ‘전쟁, 흉년, 전염병, 이 세 가지를 모두 합쳐도 술이 끼치는 손해와 비교할 수 없다’(윌리엄 글래드스턴)고 한 사람까지 있으니. 우리나라에도 고주망태, 모주망태, 곤드레만드레, 술고래 등 술과 관련한 부정적인 단어들이 꽤 많다.
고주망태는 ‘지금’ 술에 몹시 취해 있는 상태나 그런 사람을 뜻한다. 모주망태는 술을 대중없이 많이 마시는 사람, 즉 알코올 중독자를 가리킨다. 곤드레만드레는 술에 몹시 취해 정신을 못 차리는 상태.
음주 세계에서 부러움의 대상은 단연 부줏술이다. 집안 대대로 술을 잘 먹는 것을 뜻한다. 밀밭만 지나가도 크게 취하는(過麥田大醉·과맥전대취) 사람들은 꿈도 못 꿀 경지다. 볏술도 재미있다. 돈은 없는데 술이 마시고 싶어 가을에 벼로 갚기로 하고 먹는 외상술이다. 요즘으로 치면 ‘카드술’이라고나 할까. 맛도 잘 모르면서 무턱대고 마시는 벌술, 보통 때는 안 먹다가도 입에만 댔다 하면 한없이 먹는 소나기술, 흥정을 도와준 대가로 대접하는 성애술, 처음으로 술을 배울 때 마시는 배움술이라는 것도 있다.
술과 관련해 잘못 쓰는 표현으로는 ‘댓병’ 소주가 있다. 많은 이가 ‘큰 병’으로 알고 ‘댓병’이라고 쓰지만 ‘한 되가 들어가는 병’이므로 ‘됫병’이 맞다.
시부저기 가을이 저물어간다. 이런 때에 좋은 벗들과 마시는 술은 생활의 활력소가 될 수 있다. 다만, ‘사람이 술을 마시고, 술이 술을 마시고, 술이 사람을 마신다’는 법화경의 경구를 안주로 삼을 일이다.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