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원 논설위원
대통령은 ‘설득할 책무’ 있어
박 대통령은 24일 국무회의에서 “만날 앉아서 립서비스만 하고, 민생이 어렵다고 하면서 자기 할 일은 하지 않는다. 위선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국회가 다른 이유를 들어 경제의 발목을 잡는 것은 직무유기이자 국민에 대한 도전”이라는 말도 했다. 해외 순방의 여독이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밭은기침까지 해가며 매섭게 국회를 비판할 수밖에 없었던 대통령의 절박감은 이해한다. 경제활성화 법안과 노동개혁 법안,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을 이러저러한 이유를 대며 발목 잡는 국회, 특히 야당이 얼마나 밉겠는가.
내년 총선에서 제기될 야당의 ‘정권 심판론’이 먹혀들지 못하게 대통령이 ‘역(逆)심판론’ ‘국회심판론’을 펴기 위한 포석을 깔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배신의 정치 심판’(6·25 국무회의) ‘진실한 사람 선택’(11·10 국무회의) 발언에 이은 ‘국회 심판론’ 시리즈로 180석 이상을 확보하려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하지만 국회 심판론에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 3권 분립의 원칙상 입법은 국회의 고유 권한이다. 한중 FTA 비준안 처리를 호소하러 간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야당 간사를 만나지 못해 5시간이나 국회 주변만 맴돌다 발걸음을 돌린 것도 이를 상징한다. 그런 입법부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첫째가 국민의 압력(여론)이고, 둘째는 대통령의 설득 리더십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웹사이트 방송에 출연해 건강보험 개혁안, 일명 오바마케어를 홍보하고 시리아 정책에 반대 의견을 피력해 온 공화당 의원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설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여의도에서는 지금 박 대통령의 말을 패러디해 “만날 앉아서 지시만 하고 민생이 어렵다고 하면서 자기 할 일은 하지 않는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회에 숙제만 내줄 뿐 학부모(국민)와 학생(국회의원)들이 왜 이 문제를 반드시 풀어야 하는지, 어떻게 푸는 게 좋은지 안내문도 설명도 없이 불량 학생들이라고 매번 꾸짖기만 한다는 얘기다. 박정희 대통령은 손 안에 의석 3분의 1의 유정회와 온갖 물적 압박수단을 갖고 있고 국회선진화법이라는 족쇄도 없었지만, 야당 당수 김영삼을 청와대로 초청해 눈물로 협조를 당부하지 않았던가.
영도적 대통령시대는 갔다
소수파로 출발해 ‘분열의 정치’ 소리를 들어가며 코드에 맞는 인사들을 정부와 국회에 확산시키려 애썼던 노 전 대통령도 임기 말엔 이라크 파병이나 한미 FTA 같은 국익 차원의 정책들을 ‘노무현 키즈’들이 가로막는 ‘배신의 정치’를 맛봐야 했다. 3권 분립 위에 군림하는 영도적 대통령도, “대통령 못해먹겠다”며 포퓰리즘과 편 가르기 정치를 펴는 대통령도 아닌 ‘설득과 솔선의 대통령’이라야 문제 해결이 가능한 시대다.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