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겠어요
목숨이야 있고 없고 기다리죠
하얀 다리에서
산굽이 돌아가는 까만 점이
안보일 때까지
치맛자락 걷어 올려
눈물 닦으시던 분
기다리겠어요
넋이야 있고 없고
해와 달을 의지해서라도 기다리겠어요
날아갑니다
휴전선을
흰 나비 한 마리.
시인은 함북 경성에서 출생해 자랐지만 1948년 이후 고향에 가지 못했다. 북에 있는 동생과 어머니를 만날 수도 없었다. 가족에 대한 기억과 마음은 변하지 않았지만, 시인은 점차 나이를 먹어갔다. 그 애타는 속사정이야 우리는 정확히 알 길이 없고 다만 이 작품을 통해 짐작만 해 볼 뿐이다.
짐작만으로도 마음이 묵직해진다. 김규동 시인은 2011년 5∼6월에 이 작품을 발표하고 그해 9월에 작고했다. 그러니 작품을 쓸 때 그는 몹시 아팠을 것이다. 아프니까 몸도 마음도 흐릿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에 선명하게 비친 것은 어머니였다. 아니, 그래서 어머니는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이 시를 쓸 때 시인은 이미 할아버지였고, 할아버지가 된 사람에게 모친이 생존해 계신 것은 드문 일이다. 그런데도 시인이 어머니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이유는, 그가 제대로 어머니를 잃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헤어지지 못했는데 헤어졌기 때문이다. 시인에게 어머니는 24세 청년이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헤어질 때 그 상태로 어머니는 아들을 기다리고 계신다. 기다리시니 돌아가야 옳다. 목숨이 있건 없건, 넋이 있건 없건 어머니에게 돌아가리라는 시의 표현이 참 사무친다. 실향의 마음은 이런 것이다.
나민애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