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덕 산업부 기자
장래 희망은 여러 번 바뀌었지만 결국 대학 전공으로 택한 게 생명과학이었다. 1990년대 중반 각 대학에는 생명과학, 생명공학, 생물학, 미생물학 등 다양한 바이오 관련 학과가 꽤 인기를 끌었다. 이른바 유망 학과 중 하나로 불렸다. 바이오가 미래 먹을거리가 될 거라는 전망에 동의하지 않은 이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실상은 좀 달랐다. 2001년 필자와 함께 졸업한 동기, 선후배들 중 절반 이상은 대학원에 진학했다. 문제는 곧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든 나머지 졸업생들에게 선택지가 별로 없었다는 것이다. 일부는 제약사에 들어갔지만 대부분은 자의든 타의든 전공과 관련 없는 직업을 택해야 했다. 의대에 편입하거나 의학 및 치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한 이들도 꽤 있었다.
그런데 최근 달라진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우선 증권가와 제약업계에선 한미약품이 프랑스 사노피와 독일 얀센에 총 6조 원대 기술 수출에 성공한 것이 큰 화제다. 2002년 국내에서 개발된 신약 중 미국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첫 승인을 받았던 LG생명과학의 ‘팩티브’ 이상 가는 관심이다. 팩티브는 안타깝게도 실패로 끝났지만 한미약품에 거는 기대는 차원이 달라 보인다.
재계 1위 삼성의 바이오 사업도 새삼 주목을 끌고 있다. 바이오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최대주주인 통합 삼성물산의 주요 성장 축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비록 바이오의약품을 위탁생산(삼성바이오로직스)하거나 복제 바이오 의약품인 바이오시밀러를 개발(삼성바이오에피스)하는 것이지만 삼성이니만큼 스케일이 다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곧 착공할 3공장을 더하면 생산규모 기준 세계 1위를 넘보게 된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내년 초 나스닥 상장을 노리고 있다.
한미약품의 성공, 삼성의 투자는 바이오산업 전체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반가운 뉴스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이제 돈이 몰릴 곳은 바이오뿐”이라고 했다. 30년간 유망주 꼬리표를 떼지 못한 바이오가 이제는 한국 경제의 주전으로 도약할 수 있을까. 1970년대 조선 및 석유화학, 1980년대 반도체, 1990년대 휴대전화, 2000년대 디스플레이를 끝으로 명맥이 끊어진 한국 신성장동력의 계보를 바이오가 꼭 이어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