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시위 문화와 언론 보도 불법-폭력은 0.5% 불과… 시위 자체를 문제시하면 안돼 정책, 첫발부터 더 많이 논의-설득… 갈등 선제적 해결을 언론도 경제-이념 양극화 속 중간지대 넓히는 노력 필요
동아일보 독자위원회는 23일 본사 회의실에서 ‘올바른 시위 문화와 언론 보도’를 주제로 토론했다. 왼쪽부터 유종헌 미디어연구소장, 강무성 조화순 위원, 이진강 위원장, 신용묵 안민호 하종대 위원.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조화순 위원=갈등의 현상만 보지 않고 그 원인도 함께 봐야 하는 게 옳지만, ‘이 시위가 왜 일어났느냐’는 원인에만 집중하다 보면 폭력성을 간과하기 쉽습니다. 폭력에 대해선 우리 사회가 좀더 단호하게 대처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번에도 시위대가 경찰의 폴리스라인(Police Line)을 엄격히 지켰다면 그들의 주장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았을지도 모릅니다. 이번 시위에 대해 경찰의 과잉 진압 주장이 나오는 것은 다분히 한국적 현상이라고 봅니다. 시위대가 경찰차까지 파손했는데 선진사회라면 과연 이 상황에서 과잉 진압 얘기가 나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경찰의 공권력은 존중돼야 합니다.
안민호 위원=시위는 갈등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목적도 있는데 언론이 시위를 보도할 때 독자들은 ‘또 전쟁이 벌어지고 있구나’라고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최근 설문조사를 보면 여당 지지자의 다수는 이번 사태를 폭력 시위로 보고, 반대로 야당 지지자는 과잉 진압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실체는 하나인데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신용묵 위원=폭력 시위나 과잉 진압의 근원은 정책적 갈등에서 시작된다고 봅니다. 정책 입안자들이 사전에 폭력 시위나 과잉 진압이 생기지 않게 미리 조정해 나가도록 언론이 그들에게 책임감을 부여해 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강무성 위원=‘테러리스트의 아들’이란 책이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에서 테러리스트로 살았던 이집트 출신 아버지를 둔 아들이 쓴 책인데, 테러의 폭력성이 싫었던 아들은 자신이 폭력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적어 놓았습니다. 인상 깊었던 대목은 이렇습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평화적인 방법으로 일을 해결하려 하지만, 짧은 기간 그렇게 해봐서 통하지 않으면 금방 폭력적인 방법으로 넘어간다. 하지만 폭력적인 방법은 수백 년 동안 해봐도 통하지 않았다.’ 더 인내심을 갖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노력을 계속해야 하고 결국 그것이 훨씬 빠른 길이 된다는 말입니다.
이 위원장=4·19와 5·18 등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시위가 저항권의 일종이라는 인식이 퍼졌습니다. 다소 폭력적 방법을 쓰더라도 더 큰 악을 제거하기 위해 불가피하다는 생각이었죠. 그러다 보니 요즘에도 시위대들이 ‘우리가 무슨 잘못인가’라고 여기는 면이 있지 않을까요.
조 위원=시위 자체가 봉쇄됐던 시절이 있었습니다만, 지금은 언론과 집회 결사의 자유가 보장된 시대이고, 지금의 정부는 선거에 의해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입니다. 그렇다면 과거와는 달리 폴리스라인 등 법을 지키는 시위 문화가 확립돼야 합니다.
안 위원=불법적이고 폭력적 행동은 일부의 문제이지, 시위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는 건 옳지 않습니다. 시위 현장을 정파적으로 읽고 해석하는 시각도 위험합니다.
신 위원=불법 시위가 발생할 가능성을 정책 초기 단계에서 리더가 차단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실질적으로 불법 시위나 과잉 진압 시비가 없어지려면 그 사람들 스스로 자기 행위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껴야 합니다. 언론에서 준법과 불법의 차이점을 명확히 알려주고 눈높이를 제시해 주면, 당사자들이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까요.
이 위원장=‘폭력을 쓰면 순수한 목적을 이루는 데 결국 손해다’라는 것을 가르쳐 줘야 하는 것도 언론의 역할이라고 봅니다. 시위 문화의 또 다른 측면도 살펴볼까요.
신 위원=시위와 관련한 경찰 당국의 세심한 고려도 부족하다고 봅니다. 상품 시장에 블랙 컨슈머와 진성소비자가 있듯 시위도 시위대의 성격과 유형에 따라 맞춤형으로 대처 방식을 달리하면 폭력 예방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강 위원=신념이 굉장히 강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 생각대로 남들이 안 따라주면 폭력으로 가는 경우도 볼 수 있죠. 자기 신념이 옳다고 강하게 믿을 때, 민주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밀어붙이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수만 명이 모여 한목소리를 내는 건 그것 자체로 위협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폭력이라는 수단을 이용했다는 점에서 홍보 측면에선 손실이었지 않나 싶습니다.
조 위원=여러 이슈를 동시에 들고 나와, 오히려 주장이 선명하지 못했던 측면도 있습니다.
하 위원=이번 시위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언론이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시위에 나선 53개 단체의 11개 요구사항을 분명히 기사에 반영했습니다. 다만 어떤 것을 비중 있게 보도하느냐의 문제는 남는데, 신문을 제작할 때 어디에 주안점을 둬 보도해야 하는가를 늘 고민합니다.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언론이 반영해 줬으면 한다는 말씀엔 공감합니다.
이 위원장=경찰의 공권력은 존중돼야 한다는 말씀에도 의견을 같이합니다. 오늘 주제와 관련해 마무리 발언이 있다면 해 주시죠.
안 위원=경제적 양극화뿐 아니라, 이념의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습니다. 중간지대가 더 넓어져야 하는데, 오히려 줄어들고 있습니다. 중간층을 두껍게 하는 것도 언론의 역할 중 하나라고 봅니다.
조 위원=불법 시위와 폭력 시위는 다른 의미인 것 같습니다. 폴리스라인을 넘어가는 행위와 쇠파이프로 경찰을 때리는 행위는 구별돼야 한다고 봅니다. 불법 시위라고 뭉뚱그려 표현하기보다는, 폭력은 폭력이라 지적하는 것이 맞는다고 봅니다.
강 위원=시위가 벌어진다는 것은 의사표시의 통로가 가로막혀 있다는 것의 증표입니다. 불통의 측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신 위원=소통과 통합에 주력하는 정치 지도자들의 리더십도 더욱 활발히 조명했으면 좋을 듯합니다. 상품처럼 정책도 품질평가를 받는 시스템이 도입되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사회 갈등이 많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하 위원=시위 문화도 그간 많이 바뀌었는데요. 무석무탄(無石無彈), 즉 ‘돌을 던지지 않으면 최루탄도 없다’는 시위대와 경찰 간의 합의가 있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쇠파이프가 등장했고 경찰은 차벽으로 대처했습니다. 집회와 시위에 대한 자유는 확실히 보장하되 폭력에 기대지 않고 평화적으로 하겠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합니다.
이 위원장=폭력 시위와 과잉 진압 문제는 오래전부터 논란이 됐던 문제인데, 오늘 토론을 계기로 올바른 시위 문화가 정착됐으면 좋겠습니다.
정리=김동원 기자 daviskim@donga.com·안나 인턴기자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