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을 하지 않고 호르몬치료(에스트로겐)만 받은 트랜스젠더(성전환자)를 현역병 입영대상자로 판정한 병무청의 처분은 위법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부장판사 조한창)는 A 씨가 “현역병 입영대상자로 판정한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서울지방병무청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27일 밝혔다.
재판부는 “A 씨는 어린 시절 동성 남학생을 좋아하기 시작했고, 여성의 모습에 부러움을 느꼈다”며 “한 차례 입영했다가 귀가 조치된 후 가족에게 자신의 성정체성을 고백한 점 등에 비춰보면 A 씨는 허위로 주변인들에게 성정체성을 가장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같은 맥락에서 “A 씨는 성주체성 장애로 인한 정서적 불안정성 및 대인관계의 어려움 때문에 현역병으로 복무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성주체성 장애를 앓고 있는 A 씨에 대해 현역병 입영대상자로 판정한 병무청의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성주체성 장애는 본인의 성(性)을 거부하고 반대의 성별로 생활하기를 원하는 정신상태를 뜻한다.
앞서 A 씨는 2011년 4월 징병신체검사 결과 신체등급 3급 판정을 받은 뒤 같은해 11월 성주체성 장애를 이유로 병역처분 변경원을 제출했다. 이후 A 씨에 대해 재신체검사가 이뤄졌고, A 씨는 2012년 9월 다시 신체등급 3급 판정을 받았다. 이에 따라 병무청은 A 씨에게 현역병 입영대상자 처분을 내렸다.
이후 A 씨는 2012년 10월 보충대에 입영했지만 입영신체검사에서 신체등급 7급 판정을 받고 다시 귀가 조치됐다. 그는 재신체검사와 중앙신체검사소의 정밀검사를 거쳐 또 다시 신체등급 3급 판정을 받았고 병무청은 지난해 6월 재차 현역병 입영대상자 처분을 내렸다.
이에 A 씨는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을 청구했지만 기각되자 “성주체성 장애로 인해 군복무에 상당한 지장이 초래되는 경우에 해당되므로 현역병 입영대상자로 판정한 병무청의 처분은 위법하다”며 소송을 냈다.
배석준 기자 eul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