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은 여성끼리는 대화 중에 기분이 상해도 여간해선 화를 내지 않는다. 화내면 지는 거다.
여자들의 모임에도 웃음 속에 칼을 감춘 이가 있기 마련이다. 이런 사람의 기분 나쁜 말에 정색해 봐야 “그런 뜻 아니다”라며 잡아떼면 머쓱해진다. “어머! 농담인데… 설마 화난 거야?”
분노는 여성 사이에선 꺼림칙한 감정이다. 자칫 분노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가는 ‘타자(他者)’로 분류돼 왕따에 몰릴 수도 있다. 희생양 만들기에 능한 여성은 거의가 생글생글 웃는 표정이다. 물론 자기 삶이 만족스럽지 못하니까 모임에 나와 물귀신처럼 남을 물고 늘어지는 것이기는 하다.
이처럼 여성끼리는 금기시되던 분노가 가까운 이에게는 거침없이 쏟아질 때가 있다. 외출했던 아내가 돌아와 남편에게 구구절절 늘어놓는 이야기가 그렇다. 이때의 분노는 ‘작심’이라기보다는 ‘안심’의 결과물이다. 남편 앞에서는 감정에 충실할 수 있다는 믿음에 따른 것이다.
문제는 아내가 남편에게 공감을 원한다는 점이다. 여성은 공감능력이 뛰어나므로 가까운 이가 겪은 부당한 일에도 자기 일처럼 핏대를 올릴 때가 있다.
그런데 어떤 남자들은 부정적인 상황이 발생할 경우 감정부터 조절하며 규칙을 따르는 데 익숙해져 있다. 남편은 이야기를 듣다가 하나씩 따지려 든다. 그의 관점에선 무엇이 문제고, 누가 잘못했는지 규명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렇게 감정적으로 반응하니까 그런 여자한테 빌미를 주는 것 아니야?”
남편의 한마디에 아내의 분노가 방파제를 넘는다. “그럼 내 잘못이라는 거야?” 아내는 이런 일에서마저 남편이 그녀를 배려하지 않는다고 느낀다. 자신을 힘들게 하는 분노가 남편에게선 대수롭지 않게 취급을 받았다는 배신감이 모든 생각을 압도해 버린다. 결국 밖에서 있었던 일이 엉뚱한 방향으로 꺾여 부부 사이의 온갖 해묵은 시빗거리를 끄집어낸다. 부부 싸움으로 번진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이 순간만이라도 분노를 공유해 달라는 것이다. “그런 말을 듣고도 참았단 말이야?” 정도의 표현으로도 충분하다. 결국에는 “잘 참았네”로 대화가 마무리되더라도 말이다. 그녀는 혼자가 아님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한상복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