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명필 前4대강살리기추진본부장
24일 찾아간 서울 서초구에 있는 심명필 전 4대강살리기추진본부장의 개인 집무실에는 여전히 재직 시절 명패가 보관돼 있었다. 그는 최근 가뭄으로 이슈가 되는 ‘4대강 재평가론’에 대해 “4대강 사업을 평가하기에 (사업 종료 후) 3년은 너무 이르다”면서 “앞으로 수백 년 동안 이뤄지기 어려운 종합적인 강 정비 사업은 향후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8월 인하대 교수직에서 퇴임한 그는 앞으로도 한국의 강과 수자원을 연구할 계획이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2013년 정부 교체 이후 잠잠하던 4대강 사업이 최근 여론의 중심으로 다시 떠올랐다. 여야 정치권은 물론이고 정부 관료들까지 언급을 꺼리던 4대강을 다시 끄집어낸 것은 10년 만에 최악이라는 올해 가뭄이다. 9월 말에 전국 평균 저수율이 43%(평년은 77%)까지 떨어지면서 정부와 새누리당은 4대강 사업으로 모은 물을 농경지로 보내는 도수로(導水路) 공사를 시작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제2의 4대강 사업’이 시작되면 좌시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가뭄이 심한 지역의 야당 소속 지자체장들은 공사 시작을 환영했다.
심명필 전 4대강살리기추진본부장(왼쪽)이 2010년 1월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내 4대강추진본부 상황실을 찾은 이명박 전 대통령(오른쪽)과 정운찬 전 국무총리(가운데)에게 4대강 사업의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동아일보DB
“개인적으로 환영한다. 도수로 공사가 시작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업지인 충남 금강의 공주보와 백제보를 둘러봤다. 물이 가득 차서 찰랑거리고 있었다. 저장된 물에 ‘이 물은 내 물, 저 물은 네 물’이란 구분이 있을 리 없다.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4대강을 활용하는 것은 이명박 정부가 아니라 그 다음, 혹은 그 다음 정부일 것이라 생각했다. 4대강 사업으로 확보한 수자원은 큰 댐을 5, 6개 합친 정도인 11억7000만 m³에 이른다. 앞으로 기후 변화가 계속되는 만큼 비상 상황에는 언제든 이 물을 활용해야 한다.”
도수로 공사와 4대강 사업의 연관성부터 물어 봤다. 야권에서는 “도수로 사업이 4대강 지류 공사에 해당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12일 충남 공주보∼예당지(31km·415억 원)와 경북 상주보 인근(12km·332억 원) 도수로 공사 시작을 발표했다. 박수현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변인은 “농업용수 확보에는 찬성하지만 가뭄 극복을 핑계로 ‘제2의 4대강 사업’을 하려는 꼼수에는 단호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여당 역시 “4대강 지류지천 사업을 할 계획은 없다”며 선을 그었다.
―도수로 연결이 4대강 지류지천 사업에 해당되는가.
“그렇지 않다. 사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도수로 공사는 애초 4대강 사업 계획에 없었다. 지류지천 사업은 4대강에 연결되는 여러 지류를 정비하는 것이다. 본류와 연결된 지류까지 정비해 홍수에 대비해 물을 빼거나 제방을 보강하는 작업이다. 단순히 농사용 물길을 연결하는 것은 4대강 지류 공사로 보기 어렵다. 언제든 할 수 있는 작업이다.”
“지류 사업을 먼저 하자고 했던 것은 시민단체다. 다만 큰 물줄기를 잡지 않으면 사업 효과가 없다고 보고 정부가 본류부터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2011년 지류 사업 발표를 하려고 했지만, 반대 목소리가 커지며 보류했다가 결국엔 포기했다. 지난해 여름에 한 지자체 관계자가 나에게 ”4대강 공사 아니었으면 이번에 범람했을 것”이라고 귀띔해 줬다. 모든 강은 서로 연결돼 있다. 4대강 본류가 ‘고속도로’라면 지류는 ‘지방도로’다. 전체적인 교통 흐름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지방도로 역시 확장하고 안전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기자는 심 전 본부장이 퇴임하기 하루 전인 2012년 12월 27일 그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당시 인터뷰에서 그는 4대강 사업의 ‘점수’를 매겨달라는 요청에 ‘95점’을 줬다. 이유는 “하천 준설을 통해 일 년 내내 물이 흐르는 강을 만들고, 홍수와 가뭄에 견딜 수 있는 수자원 관리가 이뤄졌기 때문”이었다. 4대강 사업이 끝난 지 3년이 지난 시점에 다시 똑같은 질문을 했다. 이번엔 비슷한 이유로 “지켜보자”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언론 인터뷰를 할 때마다 외부 공격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끝난 지 3년이 지난 지금은 4대강 사업에 몇 점을 줄 수 있나.
“길게 보자. 3년이란 짧은 기간에 평가하기 어렵다. 많은 부분이 더 지나 봐야 알 수 있다. 다만 경부고속도로나 인천국제공항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높은 평가를 받을 것이란 점은 확신한다. 대표적인 것이 홍수 관리인 ‘치수(治水)’다. 이미 치수 효과는 몇 년 동안 꾸준히 입증됐다. 최근 수년간 4대강 인근 지역에서 홍수 피해 소식이 끊겼다. 매년 여름 태풍과 집중호우 때마다 반복되던 제방 붕괴에 따른 인명과 재산 피해 소식은 이제 4대강 인근에서 접할 기회가 없을 것이다. 여기에 이번 가뭄을 통해 물을 활용하는 ‘이수(利水)’에도 효과가 있다는 점이 입증됐다. 4대강 사업을 하지 않았다면 낙동강과 금강 등의 4대강 본류도 이번 가뭄에 바닥을 드러냈을 것이다.”
“그것 역시 조금만 길게 보고 평가해 줬으면 좋겠다. 강에 녹조가 발생한 것은 자연현상으로 그런 현상이 생긴 것이 4대강 사업 때문인지 판단하기 이르다. 올해 생겼던 녹조현상이 내년, 또 2년 후에는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4대강 사업을 하면서 온갖 공격을 받았다. 보가 붕괴할 것이라든지, 홍수 피해가 오히려 커진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그중 대부분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
심 전 본부장은 환경단체 등에서 ‘공공의 적’으로 통한다. 4대강 사업의 주역인 만큼 환경단체 등이 작성하는 ‘4대강 찬동 인사’ 목록에 어김없이 등장한다. 일부에서는 구한말 일본에 나라를 팔아넘긴 ‘을사오적(乙巳五賊)’에 빗대는 ‘4대강 죽이기 오적’으로 꼽는 경우까지 있었다. 여기에 대한 생각은 어떨까.
―재임 중 ‘을사오적’이라는 비판까지 받았다. 가장 억울했던 비판은 뭔가.
“대운하. 3년 9개월 동안 사람들은 나에게 대운하 이야기만 했다. 끝나는 시점까지 ‘대운하 공사를 하려는 것 아니냐’ 하고 의심했다. 지금 와서 누가 그런 이야기를 하는가. 내가 그 사업을 처음부터 끝까지 총괄했다. 그건 대운하일 수가 없었다. 대통령이 대운하를 공약으로 당선됐더라도 4대강 사업을 대운하로 바꾸면 사업 자체가 완전히 흔들린다. 정상적으로 보면 그런 거짓말은 그 어떤 사람도 할 수 없다. 그것 때문에 4대강 사업이 부당한 비판을 많이 받았다. 거기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다. 외국 강에는 보가 없으니 당장 철거하자는 주장도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였다.”
―지금 보면 합리적인 비판이었던 것도 있었을 것 같은데….
“바닥보호공이 유실되고 있다는 비판은 옳았다. 보 바닥이 쓸려가지 않게 보호공을 설치하는데 이게 쓸려갔다. 이 부분은 인정하고 미흡한 부분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한국수자원학회와 국토교통부가 정한 바닥보호공 설치 기준이 있다. 4대강 보마다 설계 기준에 맞춰 설치했지만 결과적으로 짧았다. 잘못된 기준으로 설계를 하다 보니 문제가 생겼다. 한국에 없던 공사라 외국 사례를 기준으로 세웠는데 그게 우리 실정과 달랐다.”
―결국 4대강 공사를 서둘러 완공하며 일어난 문제 아닌가.
“어떻게 보면 4대강 공사를 한꺼번에 하는 것보다 1, 2개씩 나눠서 하는 게 나았을 수도 있다. 그랬다면 각 지자체가 서로 ‘우리 강부터 해 달라’며 나섰을 것이다. 그런데 어디부터 먼저 할 것인가. 이 사업이 연속해 진행된다는 보장도 없었다. 한꺼번에 하는 것 외에 대안이 없었다. 강을 처음부터 끝까지 수리학적으로 계산해서 파고 넓히고 정비하는 사업은 향후 수백 년 동안 하기 어려운 사업이다. 그렇게 할 바에야 제대로 하겠다는 생각이 컸다.”
2013년 1월 17일 이명박 정부의 감사원은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대해 ‘총체적 부실’로 규정했다. 16개 보 가운데 11개가 ‘부실 공사’를 했다는 발표였다. 정부 교체를 한 달 앞둔 시점에 이명박 정부의 ‘핵심층’은 예상치 못한 충격에 빠졌다. 심 전 본부장은 “(감사원 발표) 한 달 전인 2012년 12월 퇴직했지만 그때부터 온갖 기자회견에 불려 다니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감사원 감사 내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2011년에 감사원이 ‘특별한 문제가 없다’고 발표한 이후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한 것이라 의아했다. 부실 공사라는 내용에 황당했고, 참담했다. 지금 생각하면 감사원이 우리 사업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것 아닌가 싶다. 이미 파악해 보완하던 기술적인 문제들을 부실 운운하며 과잉 발표한 것은 4대강 사업의 전체 효용을 보지 못한 발표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당시 온 몸에 먹칠을 당한 느낌이었다.”
―이후 4대강 참여 건설사의 담합 등 비리 내용도 나왔는데….
“4대강 사업을 위해 주말도 없이 일하던 사람이 수천 명에 이른다. 당장 4대강 사업본부만 해도 많게는 130명이 근무했다. 이들을 이 잡듯이 뒤졌지만, 개인 비리 혐의로 적발된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나 역시 2013년에 감사원의 감사를 받았다. 아무것도 나온 게 없었다. 당시 4대강 추진본부를 보는 눈이 얼마나 많았나. 더 조심해서 처신했다. 건설사들의 담합은 분명 잘못됐다. 우리 내부가 아닌 외곽에서 일어나는 관행들에 대해 알지 못했다. 다만 ‘22조 원의 100분의 1만 빼돌려도 얼마인데’라며 근거 없는 의심의 눈으로 4대강 사업 관련자들을 보는 건 옳지 않다.”
심 전 본부장은 4대강 사업이 끝난 이후 가장 아쉬운 점으로 4대강 모델의 해외 수출 불발을 꼽았다. 전 세계 10여 개 나라가 4대강 사업 모델 도입에 관심을 보인 바 있다. 한국수자원공사는 2013년 6월에 6조 원이 넘는 태국의 강 정비 사업자로 선정됐다. 하지만 태국 군부 쿠데타 이후 무기한 보류된 상태다. 그는 “4대강 사업이 끝난 지 3년이 지나며 관련 인력과 노하우가 흩어지고 있다”며 “그런 대형 공사를 추진한 경험은 좀처럼 얻기 어려운 만큼 관련 자료를 보존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