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유발 하라리 지음·조현욱 옮김/636쪽·2만2000원·김영사
전기화상으로 두 팔을 잃은 미국인 제시 설리반 씨(왼쪽)와 교통사고로 한 팔을 잃은 해병대 출신 클로디아 미첼 씨가 악수를 하고 있다. 이들은 로봇 팔 덕분에 간단한 집안일도 가능해졌다. 인류는 생명공학을 통해 미래에 영생까지 꿈꾸고 있다. 김영사 제공
저자는 이스라엘의 젊은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40).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중세사를 전공한 그의 책은 2011년 이스라엘에서 처음 출간된 후 지난해 유럽에서 영어판이 나오면서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랐다. 이후 30개 언어로 출간되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인류는 3개의 혁명을 통해 지금에 이르렀다. 약 7만 년 전 두뇌에 발생한 인지혁명으로 호모사피엔스는 갑작스레 생태계의 지배층으로 발돋움했고 1만2000년 전에 일어난 농업혁명을 통해 빠른 문명을 발달시켰다. 이후 문명 발달은 가속도가 붙어 500년 전 시작된 과학혁명의 결과 인간은 인공지능, 유전공학, 우주공학, 나노테크놀로지 등 획기적인 과학기술을 획득했다.
하지만 인간의 상상력은 언어와 결합해 “사자는 우리 부족을 보호해 주는 수호신이다”라는 신화를 만들어 낼 수 있었고, 이러한 신화와 믿음은 종교와 법질서의 바탕을 이루며 대규모의 공동체를 만들고 협동을 가능하게 해 인류문명을 이끌어낸 원동력이 됐다.
지금까지 모든 생명체는 자연선택에 의해 진화해 왔지만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간은 자신의 의도에 맞게 설계된 생명체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됐다. 1818년 출판된 ‘프랑켄슈타인’에서 메리 셸리는 인조인간 창조와 그에 따른 비극을 이야기했다.
200년이 지난 오늘날 인조인간은 꿈이 아닌 현실이 됐고, 이제 인류는 과학기술의 힘으로 여타 생명체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재창조해 낼 수 있게 됐다.
인류는 유인원에서 사이보그로 자신을 개량해 냈다.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은 우리 안에 살아 있고, 굳이 십자가와 마늘을 두려워하며 밤길을 배회하는 뱀파이어로 변신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지상에서 영생을 꿈꿀 수 있게 됐다.
인류 역사에 대한 하라리의 논의가 빛을 발하는 것은 과학과 역사를 아우르는 해박한 지식과 거침없는 주장보다도, 이와 같은 논의를 통해 인류의 현 상태를 자리매김하고 우리가 나아갈 바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철학적 성찰에 있다.
문제는 인류의 자질이다. 사자나 상어가 먹이사슬의 최정상에 서기까지는 수백만 년의 진화 과정을 거쳤고, 그동안 주변 생태계는 사자나 상어에 대한 대응책을 발전시켰다. 사자와 상어는 그 지위에 걸맞은 자신감과 위엄을 갖출 수 있었다.
하지만 호모사피엔스의 약진은 너무도 빠르게 진행돼 생태계를 교란시켰고, 갑자기 돈벼락을 맞은 졸부처럼 인류는 내적 불안을 자기과시와 잔인성으로 표출시킨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인류는 자신과 생태계를 변화시킬 만한 능력을 지녔지만 그에 걸맞은 심리적 도덕적 성숙에 도달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공멸할 수도 있는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
손현주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손현주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