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 민주화 활동 조명될수록 아버지 박정희 시절 그늘 부각…여야 ‘조문정치’ 백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 새정치민주연합 손학규 전 고문이 11월 2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 빈소에서 조문하고 있다(왼쪽부터). 사진공동취재단
‘大道無門의 승부사…‘巨山’(YS의 호) 잠들다’(조선일보)
‘“통합과 화합” 승부사 YS 마지막 메시지’(중앙일보)
민주화에 바친 김 전 대통령의 과거 이력을 설명하려면 불가피하게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부터 87년 6월 항쟁에 이르기까지 한 세대 가까이 이어져온 군정시대에 김영삼, 김대중 등 양 김이 보여준 민주화를 위한 노력을 부각할 수밖에 없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YS의 대표적 발언은 박정희 대통령 임기 말이던 1979년 10월 4일, YS에 대한 의원직 제명 이후 나왔다. YS 제명 이후 그해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 부산과 마산 지역에서는 반정부시위인 이른바 ‘부마항쟁’이 일어났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부마항쟁’을 검색해보면 여러 정의가 나오는데 ‘두산백과’는 ‘1979년 10월 부산 및 마산 지역을 중심으로 벌어진 박정희의 유신독재에 반대한 시위사건’으로, ‘21세기정치학대사전’은 ‘1979년 10월에 부산과 마산에서 일어난 박정희의 유신체제에 반대한 민주화운동’으로 각각 정의하고 있다. 교육부가 추진 중인 국정 역사교과서에 ‘부마항쟁’은 어떻게 기술될까.
민주화운동과 유신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대한민국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YS의 과거를 강조할수록 박정희 정권의 유신독재를 호출하게 된다. YS 서거를 계기로 근대화의 초석을 놓고 산업화를 앞당긴 박정희 정권의 공(功) 못지않게 그 이면에 반(反)민주·비(非)민주란 어두운 과거가 있었고, 그 과오를 바로잡기 위한 양 김의 노력이 있었음을 새롭게 조명하는 계기가 만들어진 것. 이숙현 시사칼럼니스트는 “YS를 비판하던 이들조차 그의 민주화운동에 대한 업적 등을 재평가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등 유신으로 회귀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반감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정치적 아들과 정치적 대부
YS 서거가 일깨운 또 다른 진실은 새누리당 내에서 ‘친박근혜계’(친박)와 ‘비박근혜계’(비박)로 나뉘어 대립하고 갈등하는 두 진영의 뿌리가 모두 YS계라는 점이다. YS 서거 소식이 전해진 뒤 상도동계 출신으로 문민정부에서 청와대 사정비서관을 지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고인은) 재임 중 그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위대한 개혁 업적을 만드신 불세출의 영웅”이라며 “나는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아들”이라고 했다. YS가 통일민주당 총재 시절 비서실장을 지내고 문민정부에서 정무장관 등을 역임한 새누리당 서청원 최고위원도 “대한민국의 큰 별이 가셨다”며 “김 전 대통령은 나의 정치적 대부”라고 말했다.
비박계 좌장격인 김무성 대표와 친박계 대부인 서청원 최고위원 모두 ‘YS 적장자’를 자처하고 나선 것. 상도동계 출신들이 친박과 비박으로 나뉘어 반목하는 현실에 대해 YS는 ‘통합과 화합’을 마지막 메시지로 남겼다. 중앙일보는 11월 23일자에 ‘YS의 차남 김현철 씨는 11월 22일 빈소를 찾은 김종필 전 국무총리와 대화에서 ‘지난해 입원했을 때 말씀을 잘 못했는데 필담으로 통합과 화합을 쓰셨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설명하곤 다른 말씀을 못하셨다’고 전했다고 보도했다.
친박과 비박으로 나뉘어 반목해온 상도동계 인사들이 YS 서거를 계기로 ‘통합과 화합’의 길로 들어서게 될까. 전망은 비관적이다. 비록 정치적 뿌리는 같을 수 있지만 YS 퇴임 이후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 등 세 정권을 거치며 정치적 성장과 생존을 위해 각자 선택한 길이 달라도 너무 달라 십수 년 전 과거로 돌아가기엔 무척 멀리 와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누리당 내 갈등과는 별개로 YS 서거로 조성된 조문 정국은 상도동계와 동교동계 등 여야로 나뉘어 수십 년간 반목해온 두 정치세력이 ‘화해’하는 모습을 연출하는 계기가 됐다. YS 손에 이끌려 정계에 입문한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 손학규 전 대표도 모처럼 전남 강진 ‘토굴’에서 나와 국민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뿐 아니라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 등으로 첨예하게 대립해온 여야 정치권도 YS 서거를 계기로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이숙현 시사칼럼니스트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친박계 인사들의 전략공천에 공을 들이고 있는 가운데 터져 나온 YS 서거는 박 대통령에게 악재가 아닐 수 없다”며 “11월 24일 국무회의에서 한 강력한 발언은 민주화를 기준으로 한 YS에 대한 긍정 평가와 자신에 대한 부정 평가가 일종의 제로섬처럼 여겨지는 상황에서 조급증을 느낀 대통령이 국면 전환을 위해 수위를 높인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풀이했다.
박 대통령 ‘직무유기 국회’ 질타
YS 서거가 향후 정국, 특히 5개월 앞으로 다가온 내년 총선에는 어떤 영향을 끼칠까. 전문가들은 “YS 서거가 내년 총선에 직접적 영향을 끼치지는 못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YS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이후 17년 가까운 시간이 흘러 YS계나 상도동계가 현실정치에 영향을 끼칠 세력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3당 합당 이후 이심전심으로 이어져 오던 ‘우리가 남이가’라는 인식에는 다소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최정묵 한국사회여론연구소 부소장은 “김영삼 전 대통령은 3당 합당 이후 1992년 대통령선거(대선) 때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처럼 PK+TK(대구·경북) 세력 연합으로 대통령에 당선했다”며 “TK 출신 박근혜 대통령을 이을 차기 대선주자가 여야 모두 PK 출신인 상황에서 앞으로 TK가 어떤 정치적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최 부소장은 “친박계에서 여권 내 유력주자인 김무성 대표 대신 ‘반기문 대망론’에 관심을 갖는 것은 ‘우리가 남이가’라는 TK+PK 세력 연합이 차기 대선에 작동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라고 말했다.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2015년 12월 02일~08일자 101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