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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韓中 FTA 이득 못봐도 기금 내야할 판”

입력 | 2015-11-30 03:00:00

당정 ‘FTA 상생기금’ 조성 움직임에 기업들 강력 반발




“또 하나의 준조세일 뿐입니다. 이익이 없다고 해서 안 거둬 가겠습니까?”

정부와 여당이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의 효과로 이익을 낸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상생기금을 조성하도록 한 뒤 농수산업 피해를 일부 보전하는 방안을 추진하자 29일 한 기업 관계자가 내놓은 반응이다. 재계는 당정의 이 같은 방안이 결국 야당이 주장했던 ‘무역이득공유제’의 변형된 형태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기업별로 한중 FTA로 인한 이익의 규모를 추산하기 어렵고, 설령 이를 계산해 내더라도 민간기업의 이익을 반강제적으로 거둬들인다는 발상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게 요지다.

○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제도”

한중 FTA 비준이 하루빨리 이뤄지길 기대하던 기업들은 정치권의 갑작스러운 ‘기금 조성’ 추진 소식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의 눈치를 보느라 강한 어조의 비판은 자제하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뒤통수를 맞았다”는 반응마저 나오고 있다. 벌써부터 “우리 업종, 우리 회사는 FTA 효과를 누리지 못한다”며 선 긋기에 나선 곳도 있다.

석유화학업계 한 기업 임원은 “정부가 기금을 만든다는데 기업들이 안 낼 수가 있겠나”며 “석유화학이 지금 제조업 중 유일하게 실적이 좋은 편이니 당장 눈치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송원근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본부장은 “무역이득공유제든 피해 보전을 위한 기금이든 지구상에 있지도 않은 제도”라며 “강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기금을 내도록 한다는데 기금을 낼 당사자(기업)들이 아닌 정치인들이 왜 합의를 하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한중 FTA 내용을 보면 주요 농수산물은 양허(상호 개방 약속) 대상에 거의 포함되지 않아 농어업 부문 피해는 우려만큼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며 “기존의 FTA 피해 보전 대책들도 효과를 보지 못했는데 아무 근거도 없이 기업들에게 또다시 돈을 걷겠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 기업 규모별로 기금 내야 할 판

전기전자는 한중 FTA로 인한 효과가 거의 없을 것으로 전망되는 업종이다. 중국에 판매되는 휴대전화, 디스플레이, 가전제품 등은 어차피 중국 현지나 동남아시아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국내 수출품 비중이 현저히 낮아서다.

하지만 국내 대기업들을 대상으로 기금을 조성한다면 ‘이름값’을 고려했을 때 삼성그룹이나 LG그룹의 전자 계열사들도 울며 겨자 먹기로 참여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한중 FTA의 효과와는 상관없이 당해연도 실적이나 기업 규모에 따라 기금을 낼 대상과 금액이 정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재계 한 관계자는 “FTA든 다른 정책이든 기업의 수익이 올라가면 납세 규모도 커질 것이고 정부는 그 돈으로 피해 보전책을 마련하는 게 시장경제의 이치”라며 “그게 아니라 만약 인위적인 방법으로 기금을 조성한다면 기업으로서는 생산원가에 이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결국 힘든 협상을 통해 마련한 FTA 효과를 스스로 반감시키는 꼴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박오수 전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전 한국경영학회 회장)는 “기업은 이익을 내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존재가치”라며 “농어촌 피해를 보전한다는 기본 개념은 좋지만 ‘자발’을 앞세운 징수적 성격의 기금이라면 기업 활동의 동기를 억누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 무역이득공유제 ::

FTA로 효과를 누린 기업들로부터 이익의 일부를 거둬 FTA에 의해 피해를 본 농어업 등 다른 산업에 대한 피해 보전 용도로 쓰는 것이다. 당정은 이런 방식을 변형해 이익을 낸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기금을 조성하면 이 돈으로 농어업 부문을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김창덕 drake007@donga.com·최예나·황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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