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정보화시대’ 생존법
○ 숫자의 마력에 휘둘리지 마라
굳이 디즈레일리 총리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대화를 할 때 약간의 수치를 곁들이면 그 내용을 더욱 잘 알고 말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두서없는 주장이라도 그 속에 몇 개의 수치를 인용하면 사람들은 쉽게 수긍한다. 이처럼 숫자는 과학적이라는 이미지와 설득력을 갖기 때문에 노련한 ‘말꾼’들은 필요할 때마다 숫자를 자주 활용한다. 그러나 그런 수치들은 대부분 어떤 근거도 없는 어림수인 경우가 많다. 자기의 주장을 인상적으로 보이게 하거나 순전히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억지로 꾸며 댄 수치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숫자에 주눅이 들어 있는 수문맹 혹은 수맹(數盲)들에게는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전혀 근거가 없는 어림수일지라도 언제나 효과를 발휘한다는 사실이다. 갑자기 상대방에게 몇 개의 통계수치를 갖다 대면 상대방은 어리벙벙해져서 반박도 하지 못하는 것이다.
미국의 조지프 매카시 전 상원의원(1908∼1957) 얘기다. 그가 미국 사회에 불러일으킨 광풍이 이른바 ‘매카시즘’이다. 사전적 정의를 보면 ‘1950년에서 1954년 사이에 일어난, 공산주의 혐의자들에 반대하는 떠들썩한 캠페인으로, 대부분의 경우 공산주의자와 관련이 없었지만 많은 이들이 블랙리스트에 오르거나 직업을 잃었던 사건’이라고 돼 있다. 1950년 초, 매카시 상원의원은 경력 위조, 상대방에 대한 명예훼손, 로비스트로부터의 금품수수, 음주 추태 등으로 정치적으로 사면초가에 몰린 상태였다. 사실상 정치생명이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매카시는 이런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어림수’를 활용하면서 돌파한다. 즉 그는 공화당 당원대회에서 “미국에서 공산주의자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나는 297명의 공산주의자 명단을 갖고 있다”라고 주장해 미국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던졌고 폭발적 관심을 이끌어냈다. 이전에도 그는 공산주의자들이 많다고 떠들고 다녔지만 별 반응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구체적인 수치 ‘297’을 제시함으로써 미국 사회에 폭발적 반응을 이끌어 낸 것이다. 신문들은 매카시의 폭로를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이를 주요 뉴스로 보도했으며 매카시의 폭로를 다룬 신문은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많은 사람들이 동조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엄청난 선동’은 어림수를 통해 생각보다 쉽게 이뤄진다.
○ 숫자를 보는 능력을 키워라
숫자의 힘이 커질수록 여러 수치를 해석하고 수치가 올바르게 사용됐는지 판단하는 개개인의 능력은 더욱 중요해진다. 흔히 현대를 정보화 시대라고 하지만 대부분의 정보는 결국 숫자로 요약되기에, 현대는 ‘숫자정보 사회’, 혹은 ‘숫자화 사회’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적절할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자꾸 자신의 주장을 그럴듯하게 포장하기 위해 숫자를 이용해 거짓말을 하거나 자신의 의도에 맞춰서 해석하기 때문에 함부로 숫자를 믿어서는 안 된다. 숫자에 대한 의심은 반드시 다음 세 가지 원칙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 각각의 질문에 대한 답을 면밀히 검토한 후에야 그 숫자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첫째, 문제와 직접적으로 관련돼 있는지 의심하라. 숫자가 중요한 의미를 가지려면 해당 주제나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어야 한다. 우리가 토론하거나 해결하려는 문제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숫자가 아니라면 무의미한 것이다.
셋째, 올바른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인지 따져 보라. 숫자는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고 그 숫자를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중요하다. 문제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정확한 숫자라도 잘못 해석하면 엉뚱한 결론을 낳을 수 있다. 특히 다른 의도를 가진 사람들은 숫자를 의도적으로 왜곡해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간파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거듭 강조하지만 일상에서의 대화나 토론 혹은 회사 업무에서의 보고 등에 들어 있는 수치는 매우 중요하다. 그 숫자 속에서는 상대방이 무엇에 대해서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함축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많은 경우에 숫자를 대하는 데 자신 없어 하며, 터무니없는 어림수에도 반박하지 못하고 주눅이 든다. 모바일 기기, 각종 센서, 소셜미디어가 데이터의 폭증을 주도하고 있는 빅데이터 시대에 자신만의 경쟁력을 갖추려면 숫자로부터 올바른 판단을 끄집어내거나 이런 숫자에 기초해 다른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영국의 비평가 H. G. 웰스는 “언젠가는 숫자를 올바로 이해하는 능력이 쓰기나 읽기처럼 유능한 시민이 되기 위해서 꼭 필요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 ‘언젠가’는 바로 오늘날이라고 해도 틀림없을 것이다. 숫자의 바다, 수치의 홍수 속에 떠내려가지 않도록 ‘지식의 구명조끼’를 단단히 조여 입어야 하는 시대다.
김진호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빅데이터 MBA 주임교수 jhkim6@assist.ac.kr
정리=고승연 기자 seank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