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유-무형 문화재 지정 실태]<하> 전문가 제언
문화재청이 30일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을 시작으로 다음 달 3일 승무, 7일 태평무 예능보유자(인간문화재) 선정에 나선다. 지난해 타계한 이매방 명인의 생전 살풀이춤 공연 모습. 동아일보DB
○ “전승자 많은 분야는 인간문화재 수 늘리자”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는 “1960년대 무형문화재 제도가 생겨난 것은 당시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며 전통 문화의 맥이 사라져가고 있었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50년이 지난 지금 전통 무용의 경우 각 대학 무용과에서 승무 태평무 살풀이춤 등을 필수처럼 배우고 있어 전승에 문제가 없는 만큼 인간문화재 제도 전반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무형문화재인 무용가 조흥동 씨는 “전승이 잘되고 있는 분야의 경우 인간문화재를 없애거나 지금처럼 소수의 독과점 구조 대신 많은 사람을 선정해야 지금과 같은 과열 양상을 식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재청이 인간문화재 심사 방식과 심사위원 구성에 있어 공신력을 가질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전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인 임장혁 중앙대 민속학과 교수는 “이번에 심사위원을 급히 꾸리다 보니 후보자가 제자 격인 무형문화재 이수자에게 심사를 받게 됐다”며 “심사위원 자격을 명확히 해야 선정 과정 전체에 공신력이 생긴다”고 말했다.
또 문화재청이 심사 과정에서 각 분야마다 후보자들이 한 번만 실기 심사를 치르도록 한 것도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유형문화재에 관해선 제조 시기와 발견지 등이 철저히 베일에 가려진 경우가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검증에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전문가 풀을 넓혀 오류를 줄이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1996년 가짜로 드러난 ‘귀함별황자총통’은 문화재위원과 전문위원 2명의 의견만으로 바다에서 인양된 지 불과 사흘 만에 국보로 지정됐다. 문화재 검증 과정을 소수의 문화재 위원들에게만 맡기지 말고 여러 전문가가 참여하는 길을 열어줄 필요가 있다는 것.
문화재위원장을 지낸 안휘준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은 “문화재위 의사결정 과정에서 전문위원들의 참여를 적극 유도하고 필요에 따라 외부 전문가들을 초청해 의견을 들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여러 전문가가 자료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실수를 바로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시간이 걸려도 여러 단계에 걸쳐 검증을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건길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문화재위원 전원이 국가문화재 지정에 동의했더라도 100% 진품이라는 보장은 없다”며 “한 명이라도 반대 의견이 나오면 지정을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화재 검증에서 첨단 과학기법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3차원 컴퓨터단층촬영(CT)과 X선 형광분석 등을 이용해 증도가자의 위조 증거를 발견한 바 있다. 안 이사장은 “개별 문화재에 대한 인문학적 안목과 더불어 충분한 과학적 검증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은 kimje@donga.com·김상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