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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25만원 없어 거리로 쫓겨날 판”

입력 | 2015-11-30 03:00:00

[복지사각 위기의 가정에 ‘희망의 손길’을]<3>막다른 길에 몰린 김미자씨




27일 서울 관악구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김미자(가명) 씨가 설거지를 하고 있다. 김 씨는 마땅한 수입이 없어 올겨울 임대아파트에서 나가게 될 것을 걱정하고 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치열하게 살아온 삶의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김미자(가명·65·여) 씨의 뺨 위로 눈물이 흘렀다. 영원할 것 같았던 행복이 끝나고 연이어 불행이 찾아오면서 이제 열정마저 사라질 위기에 놓인 김 씨. 올겨울 그의 소망은 마지막 남은 보금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 느닷없이 찾아온 불행

1970년 김 씨는 고향인 전남 무안군을 떠나 서울에 왔다. 한복 바느질을 했던 어머니의 손재주를 물려받은 김 씨는 의상학원에 다니며 기술을 익혔다. 우연히 같은 고향 출신인 남편을 만나 결혼한 뒤 1978년 용산에 번듯한 의상실을 차렸다. 남편의 성실함과 김 씨의 손재주 덕분에 가게는 번창했다. 고위 관료의 부인, 주한미군들까지 즐겨 찾으면서 이름을 날렸다. 10년 후 당시 패션의 중심지였던 명동으로 가게를 확장해 옮겼다. ‘성공했다’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예기치 않은 불행이 찾아왔다. 동반자이자 사업 파트너였던 남편이 1990년 후두암에 걸렸다. 투병 생활이 이어지면서 가게를 비우는 날이 많아졌고 병원비는 쌓여 갔다. 결국 의상실 지분 일부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작은 집으로 이사해 목돈을 마련했다. 하지만 남편은 병을 발견한 지 얼마 안 돼 허무하게 세상을 떠났다. 남은 것은 수천만 원의 빚이었다. 남편 없이 홀로 남겨졌다는 생각에 김 씨는 자주 악몽에 시달렸다. 하지만 자신만 바라보고 있는 딸과 아들을 키워야 한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렇게 10년을 버텨내자 빚은 조금씩 줄어들었다. 또 의상실을 자주 들렀던 한 지인은 김 씨에게 대량으로 옷을 팔아주겠다며 3000만 원을 투자하라고 제안했다. 김 씨는 빚을 갚으며 푼푼이 모은 돈을 건넸다.

하지만 얼마 뒤 지인은 연락을 끊었다. 뒤늦게 다단계 조직이었다는 걸 알았다. 어쩔 수 없이 의상실을 정리했고, 작은 집마저도 경매에 넘어갔다.

○ 보금자리 지키는 것이 소망

2002년 김 씨는 가까스로 임대아파트 한 채를 구했다. 보금자리이자 일터였다. 이곳에서 단골손님들의 옷을 수선해 주며 월 30만∼40만 원 정도를 벌었다. 아들이 보험회사에서 일하며 번 돈을 조금씩 보탰지만 생활은 늘 빠듯했다. 매달 25만 원이나 되는 아파트 임대료와 관리비도 마련하기 어려웠다. 올 6월에는 5개월 치 임대료가 밀려 “방을 빼달라”는 요구까지 받았다. 다행히 ‘위기가정지원사업’ 대상자로 선정돼 150여만 원을 지원받아 급한 불은 끌 수 있었다.

하지만 큰딸(36)이 급성 췌장염으로 병원에 입원하면서 2000만 원의 빚을 새로 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김 씨마저 지난달 낙상 사고로 거동이 불편한 상태다. 김 씨는 “열심히 살지 않은 날이 하루도 없는데 남은 것이 없다. 나가서 일해야 가족과 집을 지킬 수 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위기가정지원사업은 김 씨처럼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이웃들을 찾아서 돕는 사업이다. 신청 문의는 중앙위기가정지원 콜센터(1899-7472)로, 후원 문의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콜센터(080-890-1212)로 하면 된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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