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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시선]부처 이기주의로 표류하는 ‘탄소 감축’

입력 | 2015-11-30 03:00:00


허두영 ㈜테크업 대표이사

부국강병으로 프로이센을 일으킨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는 1727년 굴뚝을 정기적으로 청소하라고 지시했다. 굴뚝에 그을음이 많으면 벽난로의 불이 옮겨 붙어 화재가 나기 때문이다. 이때 등장한 직업이 굴뚝청소부다. 한때 어린이 착취로 지탄받았지만 지금도 독일에서 굴뚝청소부는 인기 직업이다.

정부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배출 전망치(BAU) 대비 37% 줄인다는 목표를 정하고 유엔 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 총회에 제출했다. 세계 각국이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제각기 감축 전략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이에 떠오른 것이 탄소포집저장기술(CCS·Carbon Capture & Storage)이다. 처음에 CCS는 탄소를 모아 땅에 묻는 황당한 구상으로 들렸지만, 지금은 탄소를 줄이고 청정 전력을 생산하는 혁신적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CCS는 공장 굴뚝에서 나오는 탄소를 모아 텅 빈 유정(油井)에 묻어 버리는 기술이다. 굴뚝의 그을음을 치우는 굴뚝청소부의 기능을 거대한 첨단기술로 구현한 것이다.

최근 포집 저장 기술을 개발하는 산업통상자원부와 그 기술을 해양에서 실증하는 사업을 추진하는 해양수산부 간에 갈등이 커지고 있다. 건물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내놓는 청소부와 쓰레기통의 쓰레기를 비우는 청소부 간의 알력이다. 이 때문에 국가 차원의 기술 확보와 시장 선점에 차질을 빚을 정도다.

굴뚝은 건물 내부가 바깥보다 온도가 높고 밀도가 낮을 때 부력을 받아 떠오른 공기를 밖으로 빼내는 장치다. 우리나라 정보기술이 외국에 비해 수준이 높고 가격이 낮아 수출경쟁력이 높아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를 ‘굴뚝효과(Stack Effect)’라고 한다. 사일로(Silo)는 곡식을 쌓아 두는 굴뚝 모양의 창고다. 사일로에서는 곡식이 한쪽에서 썩기 시작해서 전체로 번질 기미를 보여도 어쩔 수 없다. ‘사일로효과(Silo Effect)’다. 다른 부서와 소통하지 않고 내부 이익만 추구하는 부서 이기주의를 꼬집는 용어다.

국가 차원의 거대한 ‘굴뚝 청소 시스템’을 추진하는데 굴뚝효과가 아니라 사일로효과가 우려되고 있다. 굴뚝과 사일로의 차이는 구멍이 있느냐 없느냐, 곧 소통의 여부다. 건물 청소부와 쓰레기장 청소부 간의 대화다. 어느 한쪽이 전체를 주관하겠다고 우겨서는 안 된다.

허두영 ㈜테크업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