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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신석호]중국 껴안고 북한 변화시키기

입력 | 2015-11-30 03:00:00


신석호 워싱턴 특파원

최근 미국 워싱턴을 방문한 한 지인은 연말 귀임을 앞둔 기자에게 중국인 관광객으로 가득 찬 서울 거리 풍경을 전해줬다. 청계천 산책로도, 광화문광장도 중국인들로 가득 차 분위기도 어수선하다는 다소 비판적인 평가와 함께.

세계중소기업학회 회장을 맡아 워싱턴에 와 있는 김기찬 가톨릭대 교수는 28일 전혀 다른 측면을 이야기했다. 그는 “중국인 관광객을 더 끌어들여야 한다. 한국의 경기 회복뿐만 아니라 안보에도 중요하다. 중국인들이 활보하고 있는 서울 거리를 북한이 함부로 공격하지는 못할 것 아니냐”고 말했다. 중국과의 경제관계를 늘려 안보 협력을 넓혀갈 수 있다는 얘기였다.

북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국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자칫 한반도 분단의 장기화, 고착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모두 해소되지는 않았다. 북한이 스스로 붕괴하지 않는 한 중국은 남한과 북한에 각각 다른 당근과 채찍을 휘두르며 ‘분할 관리’를 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원유와 식량을 지원하며 실질적으로 북한의 명줄을 쥔 중국이 나서지 않으면 북한의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북한 문제에서 미국의 대중(對中) 의존도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과거 어떤 미국 정권보다 북한 문제 해결에서 중국의 책임과 의무를 강조하고 있다. ‘전략적 인내’의 실질적인 한 측면은 ‘중국이 북한 문제 해결에 나설 때까지 참고 기다리며 설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위해 미국인들은 상당한 체면 손상도 감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16일 박근혜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친 뒤 기자회견장에 섰을 때 한 미국 여기자는 “베이징 열병식에 가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한자리에 나타났다. 그래서 미국에 보내려고 한 메시지가 무엇이냐”며 빈정거리듯 질문했다. 박 대통령의 중국행을 고깝게 보는 보통 미국인들의 정서를 그대로 반영하는 장면이었다.

그렇지만 백악관이나 국무부 당국자들은 일절 불만을 나타내지 않았다. 한국 정부 당국자들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박 대통령이 베이징에 가야 한다. 한국도 힘을 보태야 할 것 아니냐”고 주장했고, 미국 정부 당국자들은 이를 반박할 명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22일 미국 연방 상원의 대북정책 청문회에서 밥 코커 외교위원장은 “중국이 움직이지 않는 이유가 뭐냐”며 증인으로 출석한 성 김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를 몰아붙였다. 김 대표는 “중국은 북한을 너무 강하게 몰아붙이면 붕괴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 같다”며 오히려 중국의 시각으로 답변하는 듯했다. 미국은 이 문제에 대해 중국의 선의를 기대할 뿐 강제적으로 압박할 생각은 없는 것 같다.

한국이 중국을 껴안아 북한을 변화시키자는 전략은 생전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지론이기도 했다. 그는 2010년 10월 세상을 떠나기 열흘 전 기자를 만나 “중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하루빨리 체결해 경제관계를 더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중국식으로 북한을 개혁 개방시키는 데 힘을 보태 달라고 부탁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중 FTA 협상이 지난해 11월 타결됐지만 국회는 아직도 비준동의안을 통과시키지 않고 논란만 거듭하고 있다. 한중 FTA는, 좋건 싫건 나날이 커지는 중국의 영향력으로 볼 때 통상관계 이상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정치권은 한중 FTA의 안보적 의미도 깊게 살펴봐야 할 것이다.

신석호 워싱턴 특파원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