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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에 칼 빼든 러, 농산물 수입금지-근로자 사실상 추방

입력 | 2015-11-30 03:00:00

전폭기 격추에 강력 경제제재… 20만 터키 노동자 연장계약 금지
비자면제도 2016년부터 중단… 터키 주력산업 농업-관광업 큰 타격
터키 “러 조종사 시신 곧 인계”… 잇단 화해 제스처… 푸틴은 거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사진)이 단단히 화가 났다. 푸틴 대통령이 자국 전폭기를 격추한 터키에 대한 보복으로 강력한 경제 제재의 칼을 빼들었다. 격추에 대한 사과를 거부하는 터키에 대해 ‘러시아의 힘’을 보여주기로 작심한 것이다. 최근 모스크바를 방문한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에게 ‘미국 주도의 연합군 공습 협조’라는 선물을 안겨준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슬람국가(IS) 격퇴 노력에는 동참하되 터키와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는 분석이다.

푸틴 대통령은 28일 터키산 제품에 대한 금수 조치와 비자 면제협정 중단 등의 대(對)터키 제재 조치를 대통령 행정명령으로 발표했다. 이번 조치는 내년 1월 1일부터 상황이 바뀔 때까지 ‘무기한’ 실시될 예정이다.

러시아는 터키의 두 번째 교역 상대국이어서 러시아의 제재가 장기화되면 터키 경제에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금수 조치 대상으로는 식품과 채소 등 농산품과 가죽제품, 자동차 부품 등이 포함될 것이라고 현지 일간 코메르산트가 전했다. 터키는 2014년 기준으로 연 약 8000만 달러(약 920억 원) 상당의 자동차 부품을 러시아로 수출했으며 터키산 농산품은 러시아 전체 농산품 수입의 약 20%를 차지한다.

러시아는 또 자국에서 일하는 터키인들의 노동계약 연장과 신규 고용을 금지했다. 이에 따라 러시아에서 체류 중인 터키 근로자 20만 명은 계약 기간이 만료되면 사실상 추방될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 정부는 자국민의 터키 여행도 사실상 막았다. 터키와 체결한 비자면제 협정을 내년 1월 1일부터 중단하고, 터키로 가는 전세기 운항, 여행사의 터키 여행상품 판매 금지도 제재에 포함시켰다. 터키를 방문하는 러시아인은 연간 450만 명으로 전체 관광객의 12% 수준이다.

러시아 정부는 추가 제재 대상을 언론에 의도적으로 흘리며 터키를 압박하고 있다. 러시아 정부 관계자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흑해 연안의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연장 공사와 터키 원자력발전소 건설이 추가 제재에 포함될 수 있다”고 말했다. 크렘린궁의 드미트리 페스코프 공보비서는 “터키로부터의 전례 없는 위협에 푸틴 대통령이 결의에 차 있다”면서 “추가적인 제재 조치도 있을 수 있다”고 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28일 러시아 전폭기 격추에 대해 “매우 슬픈 일이다. 재발하지 않기를 바란다”며 다소 누그러진 표현을 사용했다. 하지만 사과하지는 않았다. 터키는 또 격추 당시 숨진 러시아 조종사의 시신을 곧 러시아에 인계하겠다고 29일 발표하는 등 유화적인 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30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1) 정상회의에서 푸틴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는 뜻을 밝혀 정상회담을 통한 해결 의지를 내비쳤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이 전폭기 격추 이후 에르도안 대통령의 전화 통화 요청을 두 차례나 거절한 바 있어 만남이 성사될지는 불투명하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