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병천순대·용인 백암순대·담양 암뽕순대가 대표적 … 1970년대부터 대중화
과거 순대는 크게 ‘피순대’와 ‘아바이순대’(함경도순대)로 나뉜다. 피순대는 돼지 창자 속에 피만 넣은 것으로 고려시대 한반도를 휩쓸었던 원나라 군사들이 제주도에 주둔하면서 전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몽골군은 전투식량으로 돼지의 창자와 쌀, 야채 등을 혼합해 말려 먹었다. 한국뿐만 아니라 유럽에도 순대를 전파했다. 독일의 소시지, 이탈리아의 살라미 소시지 등이 몽골 침입 후 유럽에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시지는 ‘유럽판 순대’인 것이다.
임용기 강원도 속초시 참좋은식품 대표는 “아바이순대는 한국전쟁이 끝나고 함경도 지역 피난민이 속초에 정착하면서 함경도식 순대를 이같은 이름으로 부르면서 유명해졌다”며 “돼지 대창 속에 선지, 찹쌀, 배춧잎, 숙주 등을 버무려 속을 채운 뒤 찜통에 쪄서 만든다”고 말했다. 그는 “아바이가 의미하는 대로 크고 푸짐해서 주식 대용으로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순대의 기록은 조선시대 지식인이 즐겨 읽었던 중국 원나라 때 저서 ‘거가필용’에서 가장 먼저 나온다. 이 책에선 소, 돼지, 개, 생선 등의 창자에 고기와 채소를 넣고 쪄낸 음식인 ‘관장(灌腸)’이 등장한다. 서유구가 1827년 거가필용을 인용해 지은 ‘임원십육지’에서도 양의 내장을 이용한 순대 요리법이 소개돼 있다. 순대란 이름은 순대를 일컫는 만주어 ‘셍지 두하(senggi-duha)’에서 비롯됐다. ‘순’은 피를 뜻하는 ‘셍지(선지)’, ‘대’는 창자를 뜻하는 ‘두하’가 변형된 말이다.
1970년대 이전까지 돼지고기나 소고기 부산물을 이용한 음식은 흔하지 않았다. 1970년대 들어 일본이 자국의 육류 소비가 늘어나자 수입 장벽을 낮추면서 돼지고기를 수입자유화 품목에 포함시켰다. 이에 맞춰 한국에선 돼지고기 수출을 늘렸고 팔고 남은 돼지머리, 다리, 내장, 피, 껍데기, 뼈 등 부산물이 넘쳐나게 됐다. 이촌향도 현상으로 대도시에 몰려든 노동자에게 돼지고기 부산물은 허기를 달래주는 음식이었다.
오늘날 한국 순대는 지역에 따라 다른 조리법과 맛을 가진다. 충남 천안시 ‘병천순대’(아우내순대), 경기도 용인시 ‘백암순대’, 강원도 속초시의 ‘아바이순대’, 전남 담양의 ‘암뽕순대’ 등이 유명하다.
백암순대는 숙주, 두부, 콩나물 등을 순대소와 함께 갈아 부드러운 소시지를 먹는 듯한 식감을 가진 게 장점이다. 용인 백암장에서 만들어졌으며 경기도를 대표한다.
아바이순대는 돼지 대창 속에 찹쌀밥, 선지, 채소 등을 넣고 쪄낸 것으로 주식 대용으로 가능하다. 과거에는 돼지를 구하기 힘들어 오징어로 만들었다.
암뽕순대는 돼지 막창 속에 각종 순대 소를 넣는 것으로 돼지 새끼보(자궁) 수육과 같이 먹는다.
동해안 북부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동물 내장을 대신해 생선을 이용한 순대가 만들어졌다. 명태 내장을 긁어내고 소를 넣어 찐 ‘명태 순대’, 오징어로 만든 ‘오징어 순대’가 대표적이다. 과거 기록에는 어교(민어 부레)로 만든 ‘어교 순대’도 있다. 어교에 소를 넣은 뒤 양쪽 끝을 실로 묶어 쪄낸 음식으로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다.
전통 순대는 훌륭한 철분 공급원이다. 육류, 곡류, 채소류 등이 골고루 들어 있어 완전식품에 가깝다. 선지를 함유하고 있어 빈혈을 가진 여성에게 유익하다. 순대는 소금보다 새우젓에 찍어 먹는 게 건강에 낫다. 새우젓이 내장 특유의 냄새를 감소시키기도 하지만 지방분해효소인 리파제가 함유돼 소화를 돕기 때문이다.
지역별로 순대를 찍어 먹는 장(醬)도 다르다. 수도권에서는 주로 소금을 이용해 순대를 먹는다. 부산을 포함한 경남 지역에서는 막장이나 쌈장, 광주에서는 초장, 충청에서는 새우젓 등을 곁들인다.
취재 = 현정석 엠디팩트 기자 md@mdfac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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