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택동 정치부 차장
여당은 한중 FTA 비준에 야당이 협조하지 않으면 내년도 예산안을 정부 원안대로 처리하겠다고 공언했다. 야당은 누리과정 예산에 중앙정부 지원분을 늘리지 않으면 한중 FTA 비준에 동의하지 않겠다고 버텼다. 여기에다 여당은 국제의료사업지원법 등을, 야당은 대리점거래공정화법 등을 협상 대상에 추가시켰다.
이렇듯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사안을 묶어 처리하는 것이 한국 정치에는 일반화돼 있다. 올해 여야 지도부가 합의한 사안들을 몇 개만 되짚어 보자.
‘정치는 협상의 산물’이기 때문에 용인될 수 있는 일일까. 그렇지 않다. 관련 없는 사안들을 묶다 보면 무리가 생긴다.
첫째, 법안 연계 처리는 의원들 스스로 강조하는 ‘상임위 중심주의’와 배치된다. 각 상임위에서 법안을 상정하고 논의해서 문제점을 보완한 뒤 본회의에서 처리하거나 보류하는 것이 정상적인 법안 처리 절차다. 그런데 여야 지도부 간에 주고받기를 하다 보면 상임위에서 충분히 합의되지 않은 법안도 갑자기 처리하게 된다.
둘째, 연계 처리는 상대방의 약점을 볼모로 잡는다는 점에서 정치 도의상 바람직하지 않다. 그동안은 주요 사안을 시한 내에 처리해야 하는 여당에 약점이 많다 보니 주로 야당이 연계 전술을 썼지만 이번에는 ‘예산’이라는 무기를 여당이 쥐면서 서로 연계 전술을 구사하는 형태로 바뀐 것이다. 치졸한 싸움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배울까 무섭다.
6, 7월 정국을 달궜던 국회법 파동에서 이런 문제점이 집약적으로 나타났다. 공무원연금법 처리가 급했던 여당의 약점을 야당이 파고들었고, 급한 마음에 운영위원회에서 충분히 논의되지 않은 사안을 여당 지도부가 받아들이면서 파국이 빚어졌다.
이런 성숙한 국회를 기대하기 어렵다면 법안 연계 처리를 금지하는 법이라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연계처리금지법 제정마저 다른 법안이랑 연계 처리하자고 할까 봐 겁이 나기는 하지만.
장택동 정치부 차장 will7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