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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원의 명화를 빛낸 장신구]못다 이룬 왕비의 꿈, 그리고 반지

입력 | 2015-12-01 03:00:00


작자 미상, 가브리엘 데스트레 자매.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이 자랑하는 30여만 점의 소장품에는 시공을 뛰어넘어 우리를 감탄과 감동에 젖게 하는 작품이 수없이 많다. 그러나 이 작품은 ‘놀라움’과 ‘궁금증’이 더 추가되어 관람객으로부터 ‘어?’ 하는 탄사를 끌어낸다.

붉은 커튼과 흰 천에 둘러싸인 욕조, 그 속에 당당하게 벗은 몸을 드러낸 두 여인! 색깔은 다르지만 똑같은 머리 스타일에 똑같은 진주귀고리를 하고 있다. 게다가 한 여인이 다른 여인의 유두를 꼬집고 있고 꼬집힌 여인은 왼손에 반지를 들고 있다. 이들이 풍기는 기묘한 아름다움은 보는 이들에게 호기심의 우물을 깊이 파게 만든다.

반지를 든 여인은 프랑스 앙리 4세의 정부인 가브리엘 데스트레이고 왼쪽의 여인은 동생 빌라 부인이다. 가브리엘은 이미 왕과의 사이에 두 아들을 두었고 세 번째 아이의 출산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다. 동생이 새 아기의 양식을 생산하는 언니의 유두를 꼬집고 있는 것, 뒤에서 빨간 옷을 입은 유모가 아이의 배냇저고리를 짓고 있는 것은 모두 새로 태어날 아이를 맞을 준비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그러나 운명의 수레바퀴는 엉뚱한 곳으로 굴러 왕비와의 이혼을 애타게 기다리던 예비 왕비 가브리엘은 그림이 그려진 1년 후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산고로 30세에 사망하고 만다.

가브리엘의 절실한 마음은 그녀가 들고 있는 사파이어 반지에 응축되어 있다. 그 반지는 왕이 대관식 때 착용한 특별한 반지로 자신의 변치 않는 사랑의 약조로 준 것이다. 사파이어 반지는 영국 찰스 왕세자가 다이애나 비에게 약혼 선물로 준 데 이어 윌리엄 왕세손이 케이트에게 다시 약혼 선물로 주게 되면서 굳은 사랑의 언약을 증언한다. 앙리 4세는 가브리엘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고 오랫동안 검은 옷을 입고 애도하며 고통스러워했다.

프랑스 ‘퐁텐블로 화파’가 1594년경에 그렸다는 점만 알려지고 작자는 미상으로 남아 있어서일까. 이 그림 앞에 서면 관람객으로부터 나온 궁금증이 늦가을 낙엽처럼 수북하게 쌓여 있는 것이 느껴진다.

이강원 세계장신구박물관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