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배 전문기자·풍수학 박사
그는 인터뷰에서 “지구를 다스릴 세계적 지도자를 배출하는 자미원(紫微垣) 명당 터를 혼자만 알고 있다”며 대권에 뜻을 둔 정치인들을 은근히 유혹했다. 기자는 “말씀에 ‘뻥’이 너무 심하지 않습니까?” 하고 따지듯 물었다. 그러자 그는 껄껄 웃으면서 “이보시게! 풍수의 바람 풍(風) 자가 바로 ‘뻥 풍’이고 ‘허풍(虛風)’이라는 걸세. 풍수쟁이는 뻥을 먹고 사는 법이야” 하고 응수했다.
‘뻥 풍수’는 특히 땅의 모양새를 보고 사람이나 짐승에 빗대 표현하는 물형론(物形論)에서 심하게 나타난다. 납득할 만한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자신의 느낌과 생각대로 땅의 기운을 설명하기 때문이다.
최근 국립서울현충원에 있는 김영삼,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의 묘를 두고 봉황이 좌우 날개에 알을 하나씩 품고 있는 ‘쌍알 명당’이라는 물형론도 등장했다. 신화와 상상 속의 신수(神獸)인 봉황이 같은 장소에서 한 개도 아닌 두 개의 알을 낳을 수 있을까. 또 양 날개에 두 개의 알을 품고 있는 새라는 주장도 왠지 믿음이 가지 않는다.
물론 현충원을 공작이 아름다운 날개를 활짝 펴고 있는 공작장익형(孔雀張翼形)이나 봉황이 알을 품은 봉황포란형(鳳凰抱卵形)으로 보는 것은 일견 타당하다. 그런데 공작형이든 봉황형이든 그 핵심 터는 현충원의 ‘안방주인’인 창빈 안씨(1499∼1549)가 묻혀 있는 동작릉이다. 조선 중종의 후궁이자 선조의 할머니인 창빈 안씨는 양주 장흥 땅에 묻혔다가 당시는 과천 동작리였던 지금의 현충원으로 이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후궁의 자손인 선조가 왕위에 오르자 이곳이 천하 대명당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풍수학자인 김두규 우석대 교수는 “선조 이후 조선이 망하기까지 역대 임금이 모두 창빈 안씨의 후손인 데다 창빈 사후 130년 만에 그 후손이 1000여 명으로 늘어난 것을 보면 명당임에 틀림없다”고 말했다. 지금은 창빈 안씨 묘역을 중심으로 이승만 전 대통령 묘와 박정희 전 대통령 묘, 장군 제1묘역과 유공자 제1묘역 등이 호위하듯 배치돼 있다.
김대중, 김영삼 두 전직 대통령의 묘 터는 어떨까. 창빈 안씨와 지척에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가 하늘에서 기운이 하강하는 천기형(天氣形)이라고 한다면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묘는 땅에서 기운이 치솟는 지기형(地氣形)이라고 할 수 있다. 천기형이든 지기형이든 그 기운(에너지)의 질과 강도에 따라서 명당 여부를 따질 수는 있지만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아닌 듯하다. 어찌 됐건 두 사람의 인연이 참 묘하기는 하다. 같은 지관에게 의뢰해 300m 거리를 두고 좌우로 나란히 자리를 잡았는데도 기운의 성질은 확연히 다르니 말이다. 평생 동지적 관계이자 라이벌이었던 두 사람의 숙연은 내세에까지 이어지는 듯하다.
안영배 전문기자 ojong@donga.com·풍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