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하지만 국가장을 마치고 YS 시절 문건들을 뒤늦게 뒤적거리다 적지 않게 놀랐다. 1997년 외환위기로 세상의 빛을 보지는 못했지만, 국민복지 시대의 초석을 다지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복지’는 국민에게 생소한 개념이었다. 복지는 그저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는 제도’로 여기던 시절이었다. 더구나 외환위기 전까지 경제성장률이 7∼8%대에 이르렀다. 성장에 집중했지 보편적 복지에 대한 국민의 요구가 강하지 않던 시기다. 하지만 YS는 안주하지 않았던 것 같다. 1995년 3월 ‘삶의 질 세계화를 위한 국민행복기획단’을 출범시키고 복지국가를 향한 로드맵을 설계하는 데 박차를 가했다.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60세에서 65세로 늦추는 개혁을 구상한 것도 선제적 조치로 평가할 만하다. 이 개혁안은 YS 퇴임 후인 1998년 국회를 통과했는데, 15년 뒤인 2013년부터 2033년까지 20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개시 연령이 늦춰지게 설계됐다. 김용하 순천향대 보험금융학과 교수는 “서유럽에선 연금 개시 연령을 1, 2년만 늦춰도 폭동이 일어난다”며 “YS가 개혁 구상을 하지 않았다면 더 어려웠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군인, 공무원이 퇴직 후 국민연금에 가입해도 공직 재직 시절 보험료 납부 기간을 인정해 주는 연금 연계 제도도 YS 시절 계획됐는데, 2009년 8월에야 시행됐다.
YS의 복지국가를 향한 꿈을 되돌아보면서, 정치의 늪에 빠진 2015년의 복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표를 얻기 위한 선심성 복지, 자기 임기만 버티면 된다는 이벤트성 복지들이 판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의 우발적 구호에 의해 도입된 무상보육은 결국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누리과정 예산 갈등이란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박근혜 정부가 도입한 기초연금도 차후 비슷한 갈등을 겪을 공산이 크다. 서울시, 경기 성남시가 추진하는 청년수당도 장기적 재원조달책이 부족해 보여 걱정스럽다.
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noe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