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차별도 우대도 안 돼… 절이나 교회가 치외법권 될 수 없어 과거 명동성당이 내려놓은 특권, 지금 주장하는 것은 시대착오 공권력 어디든 똑같이 미쳐야 경찰이 며칠 내 한상균 못 끌어내면, 종교적 치외법권 선례 생긴다
송평인 논설위원
먼저 불교라 해서 기독교보다, 기독교라 해서 불교보다 우대받아서는 안 되고 나아가 종교집단이라고 해서 비(非)종교집단보다 우대받아서는 안 된다. 경찰이 법원이 발부한 구속영장을 갖고도 조계사에서 한상균 민노총 위원장을 끌어낼 수 없다면 조계사는 종교시설이라고 해서 다른 시설에 비해 특별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법 앞의 평등이라는 민주 국가의 원칙은 무너진다.
우리나라 헌법은 어느 나라 헌법보다 세속적이다. 대한민국은 태국처럼 부처님의 가호로 세워진 것도, 미국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세워진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 헌법에는 부처님이나 하나님에 대한 언급은 고사하고 ‘하늘이 부여한(천부·天賦) 인권’이란 개념도 없다. 인권도 그냥 인권일 뿐이다. 이 세속적인 공화국에서 종교가 종교라고 해서 우대받아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우리나라만큼 온갖 사회문제에 전문성도 없는 종교인들이 개입해 이래라 저래라 하는 나라도 없다. 이번에도 조계종 화쟁(和諍)위원회가 중재를 자청하고 나서 ‘노동 관련법 개정을 위한 사회적 대화기구’를 제안했다. 이미 노사정 회의가 있는 데다 또 다른 회의가 필요하다면 세속의 현자들에게 맡길 일이지 종교인이 나설 일은 아니다. 4대강이라면 수자원 관리를 잘 아는 사람이 얘기해야지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 건드리는 것조차 창조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신부들이 얘기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리스가 과거 경찰의 대학 진입을 불허한 법을 가진 적이 있다. 그 결과 그리스 대학들이 극좌파들이 모여 화염병 제조 등 불법을 저지르는 온상이 되고 그것이 그리스가 망하는 데도 일조했다는 그리스 기자의 외지 투고를 본 기억이 있다. 민주 국가를 공간의 이미지로 표현한다면 평평한 세상(flat world)이다. 주권은 모든 공간에 똑같이 미쳐야 한다. 한 군데라도 미치지 못하는 곳이 있으면 불법이 그곳으로 몰리고 법질서는 흐트러진다. 유일한 예외가 외교공관에 대한 치외법권이다. 그것도 국가의 호혜에 따른 것이므로 양국 전체로 보면 평평한 것이다. 종교적 치외법권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
과거 독재 시절에 천주교 명동성당이 정권의 공권력 행사에 저항하는 보루 역할을 한 적이 있다. 민주화 이후 명동성당은 스스로의 힘으로 쌓아올린 특권을 스스로 내려놓았다. 최근 김영삼 전 대통령의 별세로 민주화를 이끈 김대중 김영삼 양김의 업적이 새로 조명받았다. 1987년 민주화는 불완전했다고 항변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5년 뒤 김영삼의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다시 5년 뒤 김대중에 의해 여야 정권교체도 이뤄진 후 국회와 법원의 권력 교체까지 경험하면서 한국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민주주의 국가가 됐다. 이제 더 이상 종교적 치외법권을 주장해서는 안 된다. 조계사 일부 신도들조차 그런 특권을 스스로 내려놓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 않은가.
2년 전 철도노조 불법파업 주도자들이 조계사로 숨어들었다. 박근혜 정권이 그때 그 일을 방치한 결과 유사한 사태가 재발했다. 첫 번째 사례와 두 번째 반복되는 사례는 그 무게가 다르다. 한 위원장이 5일로 예고된 민노총 집회 때까지 조계사에 머문다면 그 이후 자발적으로 체포되든 도망가든 조계사는 치외법권의 공간으로 굳어질 것이다. 박근혜 정권이 앞으로 며칠 사이에 이 굳어져 가는 선례를 중단시키지 않으면 단지 현 정권이 부담을 안고 가는 문제가 아니라 차기 정권들에까지 두고두고 부담을 주는 관행이 될 수 있다. 최소한 그런 무책임한 정권으로 남아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