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연수 논설위원
FT는 ‘대처 시대의 종언’이란 칼럼에서 “공기업 민영화와 규제 완화라는 그의 자유주의 정책은 금융위기의 원인을 제공함으로써 역사적 정당성을 상실했다”고 비판했다. 최근 영국 경제는 나아졌지만 대처에겐 여전히 제조업을 무너뜨리고 금융위기를 불렀다는 평가가 따라다닌다.
요즘 한국은 30년 전 영국 대처 총리 시절과 비슷해 보인다. 1980년대 영국은 “고임금으로 제조업 분야에서 중국과 경쟁할 수 없다. 서비스경제로 가야 한다”는 논리가 팽배했다. 대처 정부는 제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규제 완화를 통한 ‘금융 빅뱅’에 중점을 뒀다.
그 결과 런던은 세계적인 금융도시로 컸지만 제조업을 하던 다른 지역들은 피폐해졌다. 경제가 무너지고 빈곤층이 늘어난 지역에는 범죄 마약 가정해체가 따랐다. 런던에는 은행가 변호사 컨설턴트 등 고액 연봉자가 늘었으나 대부분의 국민은 마트 계산대나 콜센터 같은 단순 서비스직밖에 구할 수 없다(다니엘 튜더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이 지난달 30일 국회를 통과하자 “인구 14억 시장이 열렸다”며 환영 일색이다. FTA는 우리한테만 기회가 아니고 중국 기업들에도 기회다. 중국은 한국 시장을 통해 한층 빨리 경쟁력을 높일 것이다. 세계를 제패한 한국의 스마트폰 TV 자동차 냉장고 같은 제품들이 5∼10년 안에 국내에서도 찬밥 신세가 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그 다음이다. 중국은 우주항공 의약 고속철도 같은 첨단산업에서도 이미 우리를 앞질렀다.
신흥국 경제가 발달하면서 생산시설이 옮겨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흐름이다. 세계 제조업의 중심은 산업혁명의 발상지인 영국에서 미국, 독일과 일본, 그 다음은 한국 중국 등으로 옮겨 왔다. 이 과정에서 영국은 손을 놨지만 독일과 일본은 제조업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재탄생시켰다. 독일과 일본 사람들이 경기침체 속에서도 안정된 삶을 누리는 것은 제조업이 만든 일자리 덕이 크다. 반면 서비스업 비중이 커진 미국과 영국은 소득양극화 빈곤 범죄 같은 사회문제에 시달린다.
제조업 무너진 영국 닮아간다
최근 국내에서 생산하는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 대신 국내 기업들이 해외에서 생산하는 ‘메이드 바이 코리아(Made by Korea)’로 국가의 산업전략을 바꾸겠다는 얘기가 나온다. 미국이 ‘제조업 부활’을 외치고 중국은 “2025년까지 첨단 제조업 강국이 되겠다”는데 우리는 ‘메이드 인 코리아’를 포기하겠단다. 한국은 올해 사상 처음 제조업 매출이 마이너스로 떨어졌고 수출도 크게 줄었다. 경고음이 강하게 울리고 있다. 이 정부도 대처처럼 제조업을 망가뜨린 정권이라는 역사적 평가를 받게 되면 어쩔 것인가. 지금 문제는 서비스업이 아니라 제조업이다.
신연수 논설위원 ys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