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선 문화부 기자
안녕, 나 성덕선이야. 요즘 짜증나는 일을 겪었어. 내 소꿉친구 정환이가 야설(야한 소설) ‘황홀한 사춘기’를 읽다가 나한테 딱 걸렸지 뭐야. 주인집 정봉 오빠도 이 책을 좋아한다고 하더라고. 남자들이란….
울 언니 ‘서울대 운동권’ 성보라는 요즘 이상한 책만 봐. 언니 책가방을 몰래 보니 ‘한국민중사’(풀빛) 같은 책이 보여.
6월 28일자 동아일보 출판 관련 기사를 봤어. ‘서정시 인기 2년째 강세’라는 제목의 기사가 보이더군. 기사에서는 서정시의 강세를 이렇게 분석했네.
‘… 출판계에서는 이 현상이 정치 사회적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정치상황이나 사회구조가 복잡한 환경 아래서는 상대적으로 서정을 주조로 한 시편들이 많이 읽힌다는 것이다.’
난 잘 모르겠지만, 정치 사회적 상황이 복잡하다는 의미는 데모를 많이 해서 그런 것 같아. 우리 언니처럼. 1987년 6월 항쟁을 겪으며 대통령 직선제를 하고도 군정 종식에 실패했잖아. 그래도 난 행복해. 서울 올림픽도 열리고. 아빠가 그러는데, 저달러·저유가·저금리의 ‘3저 호황’으로 다들 살림살이도 괜찮대. ‘반지하’ 우리 집만 빼고 말이야.
안녕하세요. 45세 주부 성덕선입니다. 예전에는 로맨스 소설 같은 책만 봤지만 요즘은 서점에 자주 들러 책을 많이 사려고 해요. 다른 사람들은 어떤 책을 읽는지도 궁금하고요.
최근 교보문고가 발표한 올해 베스트셀러 목록을 봤어요. ‘미움받을 용기’(인플루엔셜)가 단연 1위였어요. 이 책은 35주 넘게 연속 1위에 오르며, 이 서점이 1981년 베스트셀러 집계를 시작한 이래 가장 오랫동안 1위를 차지했어요. 사람들이 살아갈 용기를 얼마나 갈구하는지 알 것 같아요.
6월 9일자 동아일보 기사를 보니 상반기 출판시장의 키워드가 ‘용기’와 ‘불안감’이더군요. 기사에는 ‘… 경기침체, 취업난, 노후 대비 등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자기계발, 재테크 관심으로 이어진 것 같다’라는 분석이 나오네요. 김난도 서울대 교수의 인터뷰 기사에도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 등이 ‘(아이들에게) 내 힘으로 각자도생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한 것 같다’라는 내용이 있네요.
세상은 1988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어수선하지만 그래도 그때는 다들 행복했어요. 응답하라, 1988.
민병선 문화부 기자 blued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