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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우이웃 돕기 톡톡]“외로운 쪽방촌 이웃… 매일 아침 1000가구 돌며 안부 확인”

입력 | 2015-12-04 03:00:00

“자선냄비 봉사 40년… 쌓여가는 온정 보면 혹한에도 행복”




《 12월입니다. 날씨가 추워지니 어깨가 점점 움츠러듭니다. 나보다 더 힘겨운 겨울을 나는 이웃을 돌아봐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빨간 자선냄비에 성금을 넣고 총총 사라지는 사람, 홀로 사시는 노인을 위해 휴일을 기꺼이 바쳐 김장 배춧속을 채우는 사람, 쪽방촌에서 매일 아침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이웃의 안부를 확인하는 사람…. 남을 돕는 게 행복이라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꽤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이 사회가 조금은 더 따뜻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현재 힘겨운 삶을 사는 이웃들. 우리는 그들을 ‘불우이웃’이라고 부릅니다. 진심으로 그런 이웃을 돕는 사람들을 만나봤습니다. 》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이웃 돕는 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에요?”

―제가 올해 일흔 다섯이에요. 하지만 저보다 나이가 더 많은 어르신 가운데 힘겹게 사시는 분도 적지 않아요. 동사무소에서 반찬을 만들어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에게 전하는 데 참여하고 있지요. 꽈리고추볶음, 쇠고기뭇국 등을 격주로 만듭니다. 반찬을 전하러 갔을 때 눈에 띄는 게 어르신들이 몸을 둘둘 말고 계시는 이불이에요. 그걸 빨아다 옥상 맑은 햇볕에 널죠. 이름과 주소도 일일이 이불에 매답니다. 날씨가 추워지면 어르신들은 주로 그 이불 안에 계실 건데 그 이불이 제일 청결해야 하지 않겠어요? 나이가 드니 주변을 더 신경 쓰게 되죠. 좋은 일을 하다 보니 중독되는 것 같다오.(정금순·75·여·서울 마포구 자원봉사자)

―여긴 서울역 근처인데 ‘동자동 쪽방촌’으로 불러요. 여기 사람들은 찾아오는 사람도, 찾아갈 사람도 없어요. 쓸쓸하고 불안한 날을 보내고 있지요. 그 사람들의 이삿짐도 날라주고 냉장고 밑에 바퀴벌레 약도 뿌려줬어요. 퉁명스럽고 쌀쌀맞던 사람들이 고맙다 하더라고요. 참 따뜻한 말이었어요. 오히려 그 말에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았어요. 뭐든 더 열심히 하고 싶고, 의지가 되는 가족이 생긴 것 같아 좋았어요. 그 힘으로 계속 이웃을 돕고 있어요. 요즘은 자율방범대 30명과 함께 매일 아침 1000가구를 일일이 방문해서 혹시 밤사이 우리 이웃이 아파서 쓰러져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고 있어요.(김정길·70·서울 용산구 자율방범대장)

―노인복지관에 찾아가서 태권도 시범을 하고 안마도 해드렸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드리니까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저는 누군가를 돕거나 뭔가를 기부할 때는 이름을 알리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저 또한 아프리카에 빵을 보내는 기부를 하는데 이름을 밝히지 않고 있어요. 도움을 주는 쪽에서도 우쭐해지거나 자랑하는 느낌 없이 남을 도와줄 수 있고, 도움을 받는 쪽에서도 주는 사람에게 창피하다는 기분을 느끼지 않고 받을 수 있으니까요.(손재현·13·경기 남양주시 송라초교 6학년 1반)


“돕는 방법은 찾기 나름이에요”

―블로그에 글을 한 개씩 올릴 때마다 ‘콩’이 한 개씩 쌓여요. 콩이 뭐냐고요? 블로그에 글을 올리면 콩 하나당 100원 상당의 포인트를 주죠. 포인트가 쌓이면 제가 돕고 싶은 분을 지정해서 콩을 기부해요. 블로거들의 기부현황이 실시간으로 나오는데 저는 기부금이 적게 모인 데 기부해요. 제가 글을 써서 모은 콩이 돈이 되어 실제로 저렇게 불우이웃을 돕는구나 하고 투명하게 과정을 볼 수 있으니까요.(닉네임 리즈쿡·43·여·요리 블로거)

―낮은 곳에서 봉사하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벌써 40년째 자선냄비 앞에 섰네요. 올해는 지하철 4호선 회현역에서 종을 울립니다. 냄비가 가득 찬 날에는 ‘어려운 분들을 더 많이 도울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요. 저 역시 여러분의 따뜻한 마음을 체감한답니다. 바람이 많이 불고 추운 날에 두 시간씩 서 있어 보셨나요? 장갑을 껴도 너무 춥고 허연 입김이 절로 나오죠. 계속 서 있으면 붕어빵도 한 봉지 사다 주시고 쌍화탕을 사다 주시는 분들도 있어요.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렇게 챙겨주고 가신 분들의 마음이 너무 감사하지요. 따뜻한 손길은 그렇게 퍼져 나가는 것 같습니다.(최상곤·55·구세군 자선냄비 사관)

―일만 하는데 저절로 이웃을 도울 수 있으니 좋아요. 제가 다니는 회사는 소모한 칼로리와 운동 거리를 체크하고, 기부도 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회사인데요. 스마트폰에 ‘빅워크’를 켜고 10m를 걸으면 ‘1눈’이라는 포인트가 쌓여요. 이 포인트를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는 장애아동들을 위한 의족과 의수, 전동휠체어 등을 사는 데 기부하지요. 현재 회원 41만 명이 걸어서 8억 원 이상의 기부금을 모은 덕분에 40여 명의 절단 장애아동을 도왔죠. 제가 개인적으로 이웃을 도와야겠지만 일단 이 회사에 근무하는 것만으로도 보람이 있네요. 이런 회사가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어요.(이연진·26·사회적 기업 빅워크 매니저)


“이웃 돕는 게 나 자신을 돕는 것”

―고등학생 때 저희 동네에 봉사하러 온 서울대 언니·오빠에게 자기소개서 쓰는 법을 배우고 면접에 대한 조언을 들었어요. 그 덕분에 제가 서울대에 입학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이번에는 제가 받았던 도움을 나눠주고 싶어서 학교의 봉사 동아리에 멘토로 참여하게 됐어요. 소외 지역 학생들을 찾아가서 교육 봉사를 하고 있어요. 기뻐하는 학생들을 볼 때마다 보람을 느껴서 계속 봉사에 참여하게 되는 것 같아요. 봉사의 선순환이죠.(박소연·21·여·서울대 교육봉사 동아리 프로네시스 나눔실천단장)

―주로 홀몸노인을 돕는 활동에 참여하는데 일부러 신경을 쓰지 않으려 합니다. 남을 도우면서 그 점을 의식하다 보면 뿌듯한 감정이 생기는데 그게 두려워요. ‘남을 도운 잘난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할까봐 경계심이 들어요. 물론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게 보람이고 쾌감이기에 기부를 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요. 하지만 저는 기부를 한 후에는 절대 결과를 체크하지 않습니다.(이세형·28·회사원·일본 도쿄 거주)

―저도 불우이웃을 돕고는 싶어요. 하지만 12시간 종일 일해서 하루 7만 원을 손에 쥐어요. 이걸로 월세도 내야 하고 휴대전화 요금도 내야 하고, 밥도 사 먹어야 하고, 선배 결혼식 축의금도 내야 해요. 제 한 몸 건사하기도 팍팍해요. 어렵고 힘든 사람이 주변에 있다는 거 알아요. 눈에 보이고 마음에 걸리죠. 하지만 돈이나 시간을 따로 마련하기가 쉽지 않아요. 아르바이트하고 돌아오면 취업 준비를 해야 하죠. 나 자신이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하도록 준비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29·아르바이트생)


“반짝 기부나 과시형 기부는 아쉬워요”

―평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을 즐겨요. 언제부터인가 ‘신생아 모자 뜨기’의 인증 사진이 유행처럼 올라오더군요.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신생아들은 출생 직후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해 체온이 떨어져서 하늘나라로 간다고 해요. 직접 뜨개질한 모자를 여기에 전달해서 아기들을 살리려는 거죠. 긴 머리카락을 잘라서 소아암 환자에게 기부한다는 취지로 머리를 자르는 전후에 찍은 인증 사진도 있어요. 처음에는 자기표현과 어려운 사람들을 동시에 돕는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나는 이만큼 남을 돕는다?’ ‘나는 이렇게 의식 있는 사람이야’ ‘너도 해봐’ 식으로 자랑하는 걸 보면서 좀 불편했어요. 사실 남을 돕는 건 본인이 알아서 판단할 문제 아닌가요.(신모 씨·여·27·증권사 직원)

―관심을 가져 주시는 부분에 대해서는 감사하게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특별한 기간에만 찾아오시는 분들은 부담 돼요. 매년 하루라도 정기적으로 찾아와 주시면 감사하지요. 12월이어서가 아니라 언제든 매년 정해놓고 찾아오신다고 하면 저는 그런 관심은 주민들에게도 긍정적이라고 생각해요. ‘12월이니 불우이웃을 돕자’보다는 ‘어려운 이들에게는 시기별로 이런 차이와 어려움들이 있다’란 것을 많은 분이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정수현·39·쪽방상담소 사회복지사)



오피니언팀 종합·안나 인턴기자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