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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新명인열전]남편건강 챙기다 약선요리와 인연… “음양의 균형잡힌 식단이 중요”

입력 | 2015-12-07 03:00:00

<30> 약선요리연구가 최순남씨




약선요리연구가 최순남 씨가 산나물이 가득한 ‘산에 사네’ 농장의 장독대에서 구수한 향기가 일품인 된장을 꺼내고 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1일 오후 제주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목선동 교차로에서 목장 사이 꾸불꾸불한 길을 따라 1km 정도 지날 즈음 하얀 집이 나타났다. 집 마당에는 초겨울 따스한 햇살을 받은 장독대가 유난히 반짝거렸다. 항아리를 열자 비 맞은 억새줄기 색깔처럼 짙은 갈색의 된장이 가득했다. 순간 구수한 향기가 코끝을 간질였다. 장독대 옆으로 앙증맞은 연못이 자리했다. 점성이 낮아 폭발할 때 우유처럼 넓게 퍼지는 파호이호이 용암(일명 빌레 용암)에 돌나물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억새밭에 산나물을 하나둘씩 심기 시작해 지금은 100가지가 넘는 꽃과 나물이 자라는 ‘산에 사네’ 농장이다. 약선(藥膳)요리 연구가 최순남 씨(64·여)가 1만5000m² 규모의 황무지에 씨앗을 뿌려 직접 가꾼 곳이다. 야트막한 언덕에는 녹색의 양탄자가 깔려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봄나물의 대명사인 달래였다. 냉이도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가을이 지나면 땅속으로 숨는 곰취도 지천이다. 조그만 언덕이 찬바람을 막아주고 햇볕이 잘 드는 곳이어서 그런지 계절이 무색할 만큼 여러 식물이 자라고 있었다.

최 씨는 이곳에서 자라는 나물로 밥상을 차린다. 약선요리 기본인 제철 재료를 쓴다. 약선은 약이 되는 음식을 말한다. 한의학의 기초이론에 식품학 조리학 영양학을 접목한 것이다. 약선은 식재와 약재의 성질, 맛, 색, 향을 서로 배합해 질병 예방과 치료, 노화 방지와 강장 등에 도움을 주는 분야다.

○ 남편 건강 챙기다 약선요리와 인연

최 씨가 약선요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남편 조태연 씨(69)의 건강 때문이었다. 1988년 남편이 제주의 한 목장장으로 발령을 받아 근무하면서 제주와 인연을 맺었다. 전기 관련 일을 하던 조 씨가 생소한 목장 일을 맡으면서 스트레스가 많아졌다. 거친 목장 인부들과 부대끼면서 과음이 잦았다. 간 질환, 고혈압, 비만이 심해졌고 결국 심장 등에 문제가 생겨 드러누웠다. 서울의 유명 병원을 찾아다녀 봤지만 심장 이상을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성악을 전공한 최 씨는 음악학원을 운영하면서 가정에 소홀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친정어머니에게 도움을 청했다. 한약방을 했던 외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당시 친정어머니는 약선요리에 능했다.

고기 위주의 남편 식단을 먼저 고쳐야 했다. 밥상에 고기가 없으면 밥을 먹지 않던 남편은 6개월 정도 야채 위주로 식사를 하면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2년 정도 지나자 놀랄 정도로 남편 몸이 좋아졌다. 이를 계기로 최 씨는 199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약선요리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농장에 두릅, 곰취, 원추리, 삼백초, 어성초, 돼지감자, 산부추, 명이나물, 잔대를 심었다. 농약은 물론이고 비료조차 주지 않았다. 자연 상태에서 자란 산나물은 풍성했다. 10년 전 손자가 태어났을 때 산양을 사다가 길렀다. 산나물을 뜯어 먹고 자란 산양에서 짜낸 산양유는 손자에게 보약이었다. 지금까지 감기 한번 걸리지 않았으니 말이다.

약선요리연구가 최순남 씨가 ‘산에 사네’ 농장에서 봄나물의 대명사인 달래를 캐서 들어보이고 있다. 따뜻한 기운이 가득해 곰취, 냉이도 자라고 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약선은 네 가지 성질 잘 파악해야

약선은 사기(四氣)로 불리는 한(寒), 열(熱), 온(溫), 양((량,양))의 네 가지 성질을 잘 파악해야 한다. 식재료는 물론이고 신체의 성질도 마찬가지다. 찬 성질을 좋아하는 간, 따뜻한 성질에 맞는 위나 폐 등에 맞춰서 요리를 한다. 온 몸에서 피가 잘 통하도록 도와주는 균형 잡힌 식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최 씨는 음식 공부를 하면서 한식 중식 일식 등 7개 조리 자격증을 따고 약선요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쌓아 지금은 국내 최고 반열에 올랐다. “돌아가신 친정어머니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어요. 친정어머니는 40여 년 동안 당뇨를 앓고 있으면서도 단 한번도 인슐린 주사를 맞지 않고 오로지 약선요리로 몸을 관리하셨어요.”

최 씨는 산나물로 효소와 장아찌를 담근다. 오랜 숙성 과정을 거쳐 약리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몸에 좋은 균을 그대로 살려 대장까지 보내기 위해서는 40도 이내에서 발효를 시키는 게 관건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멸치젓 갈치젓 새우젓 고등어젓갈도 10년 이상 삭혀서 만든 어간장을 쓴다. 이들 젓갈 효소를 담근 항아리는 일반인이 볼 수 없는 자연동굴인 ‘비밀 창고’에 보관하고 있다. 최 씨의 딸(37)도 약선요리를 배우면서 대를 이어가고 있다.

“아이 출산을 앞둔 부부들이 식단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아기가 접하는 식성이 평생 갈 수 있기 때문이죠. 어린이들이 인스턴트식품에 길들여져 있다면 한꺼번에 바꾸기는 쉽지 않아요. 라면 등에 익숙해 있다면 거기에 야채를 조금씩 곁들인 뒤 점차 늘려가면서 식습관을 바꿔주는 게 바람직합니다,”

최 씨는 일주일에 한두 번 농장에서 약선요리 교육을 한다. 어린이들이 직접 따 온 산나물에다 전통된장을 비벼서 먹는 즉석 비빔밥 체험도 진행하고 있다. 농장을 나설 즈음 깃털이 화려한 청둥오리 한 마리가 연못에 내려앉았다. 야생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가까이 다가가도 달아나지 않고 여유롭게 물 위를 유영했다. 산나물이 풍성하게 자라고 날짐승도 편안하게 안길 정도로 농장엔 따뜻한 기운이 가득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