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행복원정대/동아행복지수]<1>행복감 가장 낮은 30대
“아이 셋과 놀러 가면서 가방 하나 달랑 들고 가는 비현실적인 예능프로그램을 보면서도 자꾸 스스로와 비교하니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어요.”
기업 전산망 관리자로 일하는 김보길 씨(33). 수년째 이 일을 하고 있지만 조만간 직장을 옮겨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다. 빠르게 변하는 정보기술(IT)의 특성상 새로운 기술을 익힌 후배들이 들어오면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최근 아이가 태어난 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불안감은 더 커졌다. 김 씨는 “주식을 해 간신히 생활비를 보충하는데 대기업 신입사원 초봉이 4000만 원이 넘는다는 뉴스를 보면 할 말이 사라진다”며 “무엇 하나라도 만족해야 행복할 것 아니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취업’의 문턱을 넘어선 한국의 30대는 스스로를 가장 불행한 세대로 여기고 있다. 이들은 부모인 베이비붐 세대보다 풍요로운 환경에서 자랐다. 그럼에도 성장이 정체된 한국 사회에서 치열한 경쟁에 직면했다. 어릴 때의 좋은 기억을 갖고 있는 동시에 스스로를 외부의 이상형과 비교하면서 불행하다고 느끼는 ‘쇼윈도 세대’의 한 단면이다.
동아일보와 딜로이트컨설팅이 진행한 이번 조사에서 30대의 동아행복(동행)지수는 전 연령대에서 가장 낮았다. 통상 나이가 들면 행복도가 높아지는 흐름을 고려하면 이례적이다. 30대의 낮은 행복감은 구직활동에 대한 불안감 때문만은 아니다. 이번 조사에서 응답한 30대의 무직자 비율(24.1%)은 20대(61.0%)보다 훨씬 낮았다. 구직의 문턱을 넘어선 30대 직장인들이 현재의 삶과 업무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면 경제적 안정도는 다소 증가(4.64점)했다. 반면 여가와 인간관계에 대한 만족감은 각각 6.76점과 5.55점이 하락했다. 딜로이트 측은 “한국의 30대는 일을 통해 느끼는 경제적 만족도는 크지 않고 일을 하면서 희생을 요구받아 삶의 질 수준이 가장 낮다”고 해석했다.
한국 30대의 불안감은 10명 중 3명꼴에 이르는 비정규직의 불안감과 이들의 낮은 임금 수준과도 연관이 깊다. 통계청에 따르면 비정규직 근로자는 전체 임금근로자의 32.5%인 627만1000여 명에 이른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도 계속 벌어져 올해 비정규직은 정규직 급여의 54.4%인 월 146만7000원을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높은 전세금과 월세비용 등 주거 문제에서까지 어려움을 겪는다. 이번 조사에선 30대에서 40대로 넘어가면서 전반적인 행복도가 개선됐다. 하지만 주택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40대가 되면 경제적 안정에 대한 만족도는 오히려 30대보다 2.64점이 더 감소했다. 30대에 주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40대에도 삶의 행복도가 개선되기 어려운 현실을 보여준 셈이다.
대기업을 다니던 아버지 밑에서 유복하게 자랐고 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박훈구(가명·35) 씨. 그는 요즘 세 번째 직장을 찾고 있다. 마케팅 업무로 직장생활을 시작했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그만뒀다. 맞벌이를 하지 않는 이상 연봉 4000여만 원으로는 아이를 키우고 집을 사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박 씨가 두 번째로 들어간 회사는 제조업을 하는 지인의 회사. 하지만 마케팅 업무를 하던 박 씨는 제조업에 적응할 수 없어 일을 그만뒀다. 그는 “고교 시절 공부를 못하던 친구는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아 주중에도 골프를 치며 여유롭게 사는데 학창 시절에 열심히 살던 나와 다른 친구들은 왜 이렇게 삶이 팍팍하고 힘든지 좌절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박 씨 같은 30대들은 자신의 현재 모습과 이상적인 자아와의 괴리에서 고통스러워한다. 이런 심리는 최근 유행한 이른바 ‘수저계급론’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부모의 재산에 따라 스스로를 금수저부터 흙수저까지로 나누는데 이는 자신의 노력만으로 넘어설 수 없는 불평등에 대한 반감과 한탄이 투영된 것이다.
최근 서울대생의 9급 공무원 합격을 둘러싼 찬반 논란 역시 같은 맥락이라는 분석도 있다. 지방의 9급 공무원에 합격한 서울대 여학생은 학교 게시판에 “월급 150만 원으로 시작하는 게 까마득하지만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9급 공무원을 선택했다”고 썼다. 이에 “서울대생이 어떻게 지방의 9급 공무원이 되느냐”는 논란부터 “아무리 취업이 힘들어도 (현실을) 인정하기 싫다”는 반응도 나왔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는 “서울대생으로의 역할 모델과 현실 사이에서 적응하게 된 사례”라며 “한국 30대들이 획일적인 삶의 목표를 위한 비교의 함정에서 빠져나와야 자신의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소유할 수 없는 화려한 물건이 즐비한 쇼윈도의 내부를 응시하며 외부에 서 있는 사람들의 심리를 묘사한 말. 현실과 이상적인 삶 사이의 괴리로 불만을 가진 한국의 젊은 세대를 의미.
특별취재팀
△정치부=김영식 차장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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