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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그들이 있어 따뜻했네”… 추위 녹이는 ‘이웃사랑 3제’

입력 | 2015-12-08 03:00:00

광주서 김치공장 운영 김의병씨, 외환위기때 실직후 무일푼서 재기
푸드뱅크에 김치기부 나눔 실천




김의병 ㈜새벽김치 대표가 7일 작업실에서 양념으로 버무린 ‘남도 김치’를 보이고 있다. 외환위기 실직 아픔을 딛고 재기한 김 대표는 2011년부터 김치로 이웃사랑을 나누고 있다. 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외환위기로 직장을 잃은 뒤 재기에 성공하면 꼭 어려운 이웃을 돕고 싶었어요. 큰 성공은 아니지만 그래도 베풀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광주 광산구 비아동에서 김치 공장을 운영하는 김의병 ㈜새벽김치 대표(60)는 14년 전 실직의 아픔을 겪었다. 화재보험회사에 입사해 지점장 자리까지 올랐지만 국제통화기금(IMF) 구제 금융 여파로 회사 주인이 두 차례나 바뀌면서 구조조정의 칼날을 피할 수 없었다. 20년 동안 회사를 다녔지만 그의 손에 쥐어진 돈은 3000만 원이 채 안 됐다. 퇴직금을 중간정산한 데다 사내 대출금까지 갚아야 했기 때문이다.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충격이 컸지만 그렇다고 넋을 놓고 지낼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시작한 일이 신용카드 영업이었다. 보험사를 다닐 때 구축한 인맥을 활용하면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을 줄 알았다. 칼바람을 맞으면서 아는 사람들을 찾아다녔지만 영업은 신통치 않았다. 밑천이 바닥 날 즈음 카드 영업을 접고 유아공부방을 시작했으나 이마저도 수월치 않았다. 그러다 자판기를 판매하는 다단계 유통업에 손을 댔다가 집 한 채 값만 날렸다. 실직한 지 2년 만에 빈털터리가 됐지만 그에게 든든한 힘이 돼준 사람은 아내였다. 미술학원을 운영하면서 어렵게 살림을 꾸린 아내 덕분에 김 대표는 재기의 꿈을 다질 수 있었다.

“사업에 잇따라 실패하면서 수업료를 톡톡히 냈어요. 그러면서 사회가 참 냉정하다는 것을 알게 됐죠. 다시 일어서면 어려운 이웃을 모르는 체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김 대표가 김치 사업에 뛰어든 것은 남동생 때문이다. 수입 김치 유통업을 하던 동생이 김 대표에게 손을 내밀었고 더 물러설 곳이 없었던 그는 마지막 인생을 걸어 보기로 했다. 차에 김치를 가득 싣고 다니며 식당을 돌았다. 광주 시내에 있는 식당은 안 가 본 곳이 없을 정도로 밑바닥을 훑었다. 그러면서 유통의 기본을 배웠다. 2년 넘게 하다 보니까 궁금증이 생겼다. ‘그 많은 김치 공장이 왜 구멍가게 수준을 면치 못할까.’ 그는 현장에서 답을 얻었다. 바로 마케팅과 판로 개척에 소홀한 탓이었다. 지역에서 생산된 신선한 재료로 전라도 고유의 맛을 내는 김치를 만들어 팔아 보자는 그의 예측은 적중했다. 손맛이 좋은 큰형수 이미자 씨(57)와 ‘남도음식연구소’를 만들어 남도 김치의 맥을 이은 것도 마케팅에 도움이 됐다. 이 씨는 광주 남도의례 무형문화재 17호인 이애섭 김치 명인의 수제자다.

2010년부터 매출이 늘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자 어려운 이웃이 보이기 시작했다. 2011년 12월 광주시 푸드뱅크에 7290kg(2500만 원 상당)의 김치를 기부하면서 나눔의 첫발을 뗐다. 그해 전남 보성군 푸드뱅크에도 5190kg(1800만 원 상당)을 기부했다. 지난해까지 연말마다 광주시 푸드뱅크에 김치를 보내 이웃 사랑을 실천했다. 김 대표는 4일 고향인 전남 장성군에 5kg짜리 김장김치 200박스(500만 원 상당)를 기탁했다. 내년 3월 장성군 나노산업단지 제2공장 가동을 앞두고 지역사회 봉사와 기업의 사회 공헌의 의미를 담았다. 김 대표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이웃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돼 주고 싶다”고 말했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