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유진 엑스플렉스 편집장
“3월은 만물이 피어나고 약동하는 계절이고, 9월은 수확과 풍요의 계절 아니냐. 아빠는 네가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하시며 지어주신 이름이다. 아무리 뜻이 좋기로서니, 임삼월과 임구월이라니…. 한 반에 같은 이름을 가진 친구가 다섯이 아니고 오십 명이라 하더라도 그냥 내 이름 ‘유진’에 만족해야 했다. 게다가, 언제인지는 잘 생각나지 않지만 ‘밤으로의 긴 여로’로 유명한 유진 오닐이라는 작가를 알고 나서부터는 내 이름을 좋아하게 되기도 했다. 그 전까지는 심지어 사람들에게 별명이 아닌 실제 이름으로 불리는 것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내가 유진 오닐을 알고 난 후, ‘어쩐지 지적이고 문학적인 사람’이 된 것 같다’며, 여기저기 내 이름을 쓰고 다니기까지 했다. 별것 아니지만, 이게 내가 내 이름의 안티에서 팬이 된 사연이다. 나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이름을 쓰고 있는데, 그것을 대하는 마음은 천양지차다. 내가 그렇게 보고자 하니, 내 이름과 나 자신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우리 자신의 느낌과 기운을 정하는 건 사실 이름도, 내게 운명론적으로 결정된 다른 요소들도 아니고 바로 우리 자신이다. 내가 그렇게 마음먹는 순간 모든 게 달라진다. 바뀐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지만 모든 게 바뀌는 셈이다.
인생을 자신의 힘으로 만들어 간다는 의미에서, 자신의 운을 한번 바꿔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우리는 종종 이름을 바꾸고, 사는 곳을 바꾸고, 외모를 바꾸기도 한다. 그게 무엇이든, 우리에게는 변화의 계기가 필요하다. 무언가를 다르게 볼 기회, 멈춰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어떤 일을 멈출 수 있는 기회, 새로워질 기회, 나아질 기회. 바뀌는 게 없는 것 같지만, 사실 모든 걸 바꿔놓을 어떤 계기 말이다. 사실 그냥 흘러가는 시간을 분으로, 하루로, 달로, 연으로 만들어 놓은 것도 우리에게 어떤 ‘계기’로서 매듭과 시작이 필요한 때문일지 모른다. 언제고 결심을 할 수 있고, 변화를 하자면 할 수도 있는데 그게 영 어려워서 우리는 부러 어떤 매듭을 설정한다. 이는 ‘어제까지는 그랬지만, 오늘부터는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이 가능한 배경이기도 하고, 망친 어제와 지난날을 회복할 수 있는 두 번째 기회가 우리에겐 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늘 다이어트는 내일부터 시작되곤 하지만… 그 얘기는 하지 않는 것으로 하자.
임유진 엑스플렉스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