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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변영욱]돌덩이냐, 봉황 알이냐

입력 | 2015-12-08 03:00:00


변영욱 사진부 차장

사진기자에게 고 김영삼(YS) 대통령은 인기가 많은 대통령이었다. 포즈를 적절한 시점에 잘 취해주는 대통령으로 유명했다. 국제무대에서 미국 등 강대국 정상들과 기념촬영을 할 타이밍이 되면 YS는 갑자기 파안대소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거나 손을 들어 길을 안내하는 듯한 포즈를 취했다. 행사를 주도하는 듯한 이미지를 대통령 스스로 연출한 것이다. 신문은 그 사진을 선택해서 사용했다. 우리 대통령이 조금은 더 나아 보였으면 하는 사진기자와 편집자들의 욕심임을 고백한다.

참모가 시켜서라기보다는 몸에 밴 탓이던 것으로 이해한다. YS는 야당 시절부터 기자들을 항상 옆에 두고 있었다. 민주화 투쟁이 주요 이슈였던 시절, 기자들은 야당 당수의 일거수일투족을 포착해 뉴스를 만들 수 있었고, YS는 인지도 상승이라는 효과를 거뒀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을 녹음할 수 있는 마이크가 없었다면, 목숨을 건 단식을 하며 침대에 누운 그를 촬영할 카메라가 없었다면 YS는 존재할 수 없었고 대통령이 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이 되었을 때 그는 이미 별도의 미디어 트레이닝 과정이 필요 없을 만큼 언론과 여론의 전문가였다. YS가 국회에서 취임식을 마치고 처음으로 청와대에 입성한 날, 당시의 청와대를 출입하던 사진기자들은 ‘아! 이게 문민화구나, 이게 민주화구나’라며 놀랐다고 한다. 대통령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참모들과 대화했고, 기자들에게도 악수를 건넸다. 그러나 딱 3개월 후 기자들과 대통령의 물리적 거리는 멀어졌다. 대통령 사진 촬영의 금기 사항과 가이드라인에 따른 제한은 군사정권 시절과 큰 차이가 없어졌다. 이후 몇 번 대통령이 바뀌었지만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경호와 의전이 우선이고, 대통령의 솔직한 모습은 사진기자들과 국민에게 허락되지 않는다.

국립서울현충원 YS의 무덤 터에서 돌덩이가 여러 개 나왔다. 지관을 포함해 여러 사람이 “전설의 동물인 봉황의 알이다. 태평성대의 징조이고 후계자들에게 큰 복이 있을 것이다”라고 해석했다. 지관은 지난달 28일 열린 삼우제에서 돌덩이를 덮고 있던 얇은 돌 조각 대여섯 개를 담은 비닐봉지를 공개하면서 “이건 알의 껍질이다”라고 했다.

이런 말을 들을 땐 덕담이려니 생각하는 게 자연스럽다. 기자는 그날 현역 국회의원을 포함한 정치인 2명이 그 돌 조각을 몰래 외투 주머니에 넣는 걸 목격했다. 정치인은 왜 그 돌 조각이 필요할까, 의아했다. YS를 신화 속 주인공으로 상승시키고, 그 ‘분신’을 몸에 지니면 자기에게도 기적이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걸까.

정치인은 정책과 업적으로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YS도 의욕만큼 많은 것을 이뤄내지는 못한 미완의 개혁가가 아닐까. 그의 공과를 다시 냉정하게 들여다볼 일이다.

변영욱 사진부 차장 cu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