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 공공조달시장 복마전]
○ 유령 사업가 활개
8일 중소기업계와 조달청 중소기업청 등에 따르면 실제로는 중소기업을 경영하지 않는 ‘유령 사업가’들이 페이퍼 컴퍼니(서류상 회사)를 만든 뒤 중국산 제품을 들여와 공공조달시장에 진출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주로 무역 관련 사업가들이지만 전직 공무원도 일부 끼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유령 사업가들은 중소기업 경영자에게 은밀히 접근해 조달시장 진출을 돕는 ‘조달 브로커’ 역할을 자처한다. 이들은 각종 증명서류를 준비하는 일부터 최종 낙찰을 받아 제품을 공급하는 전 과정을 기획하는 대가로 이익의 30%가량을 수수료로 받는다.
또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중소기업만 참여하도록 한 경쟁입찰 특례 조달시장에서 일부 중소기업들은 일단 낙찰을 받은 뒤 납품이 금지된 글로벌 기업이나 대기업 제품을 불법으로 공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북도청, 농림축산검역본부 구제역백신연구센터,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신청사 등 관급공사에 참여한 중소기업들이 실제로는 미국, 독일의 유명 회사가 만든 시스템제어프로그램을 가져다 썼다. 중소기업이 직접 만든 제품을 설치해야 하는 규정을 어긴 것이다. 현재 인천국제공항 3단계 시설공사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참여한 중소기업들이 정부에 문제를 제기했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기업과 일부 중소기업들이 하청계약을 맺었다는 소문도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경쟁입찰 특례 조달시장에 중국산이나 글로벌 기업 및 대기업 제품이 버젓이 등장할 수 있었던 데는 ‘직접생산확인제도’가 부실하게 운영되기 때문이란 지적이 나온다.
직접생산확인제도는 공공조달시장 입찰에 참가한 중소기업이 해당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도입됐다. 하지만 직접생산 여부를 확인하는 작업은 주무관청인 중기청이 아니라 위임, 재위임을 받은 품목별 조합들이 하고 있다. 중기청은 관련법에 따라 중소기업중앙회에 이 업무를 위탁했다. 중기중앙회는 품목별 조합에 직접생산 확인에 관한 고시를 만들어 제출하도록 한 뒤 고시 내용을 점검하지 않고 단순히 확인만 하고 있다.
일단 업체가 직접생산 확인증만 갖게 되면 실제 기술력을 가졌는지는 따지지 않고 공공조달시장 입찰에 참여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입찰과정에서 글로벌 기업의 제품을 가져다 쓰는 중소기업이나 페이퍼 컴퍼니가 ‘창업기업’으로 우대받는 일도 벌어진다.
그나마 입찰에는 직접생산확인제도라도 있지만 낙찰 이후에는 조합이나 정부가 관리를 하지 않아 중소기업들이 대기업 제품이나 글로벌 제품을 가져다 쓰더라도 통제가 되지 않는다. 정부 관계자는 “현재로선 중소기업이 직접 생산했다고 조합이 확인증을 내주면 믿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각 조합이 담당하고 있는 직접생산 확인증 발급업무를 조달청이나 중기청이 직접 담당하고 사후 조사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세종=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