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종일 전운 감돈 조계사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 23일째 은신 중인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더 피할 곳 없는 처지가 됐다. 국민 여론과 동떨어진 행보에 조계종과 조계사 신도들은 ‘자비(慈悲)’를 거둬들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질책에 경찰도 조계사 경내로의 강제 진입 방침을 밝혀 한 위원장 체포는 초읽기에 들어간 분위기다.
○ 초긴장 상태 빠진 조계사
8일 조계사에는 하루 종일 전운이 감돌았다. 경찰은 밤사이 민주노총이 조계사로 진입하는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기동대 11개 중대 약 900명을 조계사 주변에 비상 대기시켰다. 민주노총은 이에 맞서 경찰의 체포 작전을 ‘민주노총 궤멸 시도’로 규정하고 총파업으로 맞설 기세다.
조계사를 비롯한 조계종도 격앙된 분위기다. 한 위원장이 자진 퇴거 약속을 어기고 사찰을 정치 투쟁의 거점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위원장은 7일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자승 총무원장까지 거명하며 자신을 받아 준 조계종을 비난하기까지 했다. 그는 “사찰은 나를 철저히 고립 유폐시키고 있다. 그 전술은 자본과 권력의 수법과 다르지 않다”며 “객으로 한편으론 죄송해서 참고 또 참았는데 참는 게 능사가 아닐 것 같다”고 했다. 조계사 관계자는 “도대체 제정신이냐. 이런 말도 안 되는 ‘갑질’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며 “입으로는 노동자의 대의를 얘기하지만 한마디로 신의, 약속, 책임 같은 단어와는 담 쌓은 인물이다”라고 비난했다. 한 위원장이 스스로 고립을 자초한 셈이다.
한 위원장의 난데없는 조계종 비난은 조계사와 화쟁위원회가 이날 새벽 한 위원장에게 조계사 퇴거 시한을 통보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조계사 측은 “대화 내용은 공식 발표가 있기 전에 공개하지 않기로 했는데 한 위원장 측이 노동 관련 매체에 흘렸다”며 “도대체 믿을 수가 없다”고 했다. 그간 한 위원장에게 우호적이던 화쟁위도 “국민을 믿고 한 위원장이 자신의 거취를 조속히 결정하여 줄 것을 희망한다”며 한 위원장과 거리를 두기도 했다.
○ 대통령 불호령에 경찰 최후통첩
경찰은 9일 오후 4시까지 한 위원장이 자진 출석하지 않으면 체포 작전에 들어가기로 했다. 일단 경찰은 조계사 주변 경비를 강화하고 검문검색을 통해 한 위원장 비호 세력의 조계사 진입을 막기로 했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8일 기자간담회에서 “일명 ‘한상균 호위대’로 불리는 민주노총 노조원이 한 위원장 검거를 방해하면 범인도피죄를 적용해 엄정하게 처벌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8일 오후 6시 긴급 대책회의를 열었다. 9일 오후 4시 민주노총 조합원이 조계사 인근에 결집해 경찰 체포를 막기로 하는 등 구체적인 대응 계획을 마련 중이다. 9일 오후 7시엔 조계사 내 생명평화법당 앞에서 열리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동체대비 법회’도 예정대로 진행하고 한 위원장을 지지하는 ‘한 끼 동조 단식과 조계사 앞 연등 달기’ 행사도 12일까지 진행한다. 경찰은 조계사 주변에서 집회를 한다는 이유로 체포영장 집행을 방해하면 곧장 해산을 명령하고 이에 불응하면 가담자도 공무집행방해 혐의 현행범으로 체포할 예정이다.
박훈상 tigermask@donga.com·권오혁·김갑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