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산을 국산 둔갑시켜… 年4000억대
부산 강서구에 위치한 공립 A중학교는 지난해 말 건물의 온도와 습도, 냉난방을 제어하는 ‘빌딩 자동제어 장치’를 설치했다. ‘정부나 지자체, 공공기관이 발주한 관급 공사의 경우 빌딩 자동제어 장치를 포함한 123개 자재는 반드시 중소기업에서 구매해야 한다’는 규정에 따라 A중학교는 중소기업인 B사 제품을 샀다. 하지만 이 제어장치는 B사가 직접 만든 게 아니었다. 공사가 끝난 제어장치의 겉면에는 B사 상표가 붙어 있었지만 스티커를 뜯어내자 캐나다 유명 업체의 이름이 드러났다. 외국 제품을 수입한 뒤 이름만 바꾼 ‘무늬만 중소기업’인 제품을 공공조달시장에 납품한 것이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8일 관련 중소기업들의 제보를 받아 중소기업만 진입할 수 있는 조달시장을 점검한 결과 13개 관급 공사 현장에 납품된 교육 기자재, 발광다이오드(LED) 조명, 빌딩 자동제어 장치 등 3개 품목에 대해 중소기업이 직접 생산한 제품 대신 유명 글로벌 기업이나 대기업의 제품, 값싼 중국산 제품이 공급된 사실이 확인됐다. 대기업의 진입이 제한된 ‘중소기업 간 경쟁 제품’이 207개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위장 납품은 더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올해 초 가로등 기구, 간판, 의복, 자동제어시스템 등 10여 개 품목에서 일부 중소기업이 위장 납품을 했다가 조달청에 적발된 바 있다. 관련 업계는 위장 납품 시장 규모가 전체 경쟁 입찰 특례 조달시장(약 20조 원)의 최소 2%(약 4000억 원)가 넘을 것으로 추산한다. 일부 중소기업은 업체가 직접 생산한 제품만 납품해야 한다는 규정을 무시한 채 유명 글로벌 기업의 제품을 수입하거나 대기업 제품을 구매해 조달시장에 공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신영기 세종대 교수(기계공학과)는 “해당 제품을 직접 생산한다는 확인증만 있으면 누구나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현행 제도를 보완하고 사후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종=손영일 scud2007@donga.com·김철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