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란 무엇인가 : 『지낭(智囊)』편 3회
◆1◆
강태공(姜太公) 여상(呂尙)이 제나라 땅을 분봉받은 지 다섯 달 만에 돌아와 정사를 보고했다. 주공(周公)이 물었다. “어떻게 이토록 빨리 안정되었소?” 강태공이 대답했다. “저는 다만 군신 간의 예의와 절차를 간소화하고 예법을 행할 때도 그들의 풍속에 따르게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주공의 아들 백금(伯禽)은 노나라 땅에 분봉받은 지 3년이 되어서야 정사를 보고하러 돌아왔다. 주공이 물었다. “왜 이리도 늦었느냐?” 백금이 대답했다. “저는 풍속을 바꾸고 예법을 개혁해 부모상을 당하면 3년 뒤에 상복을 벗도록 고쳤습니다.”
◆2◆
주공이 강태공에게 어떻게 제나라를 다스리는지 묻자 강태공이 대답했다. “어진 선비를 존중하고 공적이 있는 자를 중히 여깁니다.” 주공이 말했다. “후세에 반드시 왕위를 찬탈하고 군주를 시해하는 신하가 나타날 것이오.”
이번에는 강태공이 주공에게 노나라를 어떻게 다스리는지 묻자 주공은 이렇게 답했다. “어진 선비를 존중하고 친족을 중히 여깁니다.” 강태공이 말했다. “그럼 세력이 점차 쇠약해지겠군요.”
◆평어(評語)◆
명대 학자 육가교(陸可敎)는 “만일 공자의 뜻이 실현되었다면 주공과 강태공의 말은 현실로 증명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했다. 하지만 공자의 말대로 실현되었다 하더라도 폐단이 생긴 제나라와 노나라를 이전 상태로 되돌리는 것에 불과하니 주공과 강태공을 넘어선다고는 볼 수 없다. 주공과 강태공의 자손이 만약 이 두 선조의 예언을 경계 삼아 미리 조심했더라면, 어찌 공자가 나서서 새롭게 정치 개혁을 논할 필요가 있었겠는가?
풍몽룡 지음|문이원 옮김|정재서 감수|동아일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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