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석 논설위원
그제 서울에서 5년 만에 내한 독주회를 가진 중국의 피아니스트 랑랑은 국제무대에서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클래식 음악의 슈퍼스타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연주와 이듬해 노벨 평화상 수상식 축하연주 등 눈부신 경력을 쌓은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음악 외에 또 다른 열정에 대해 열변을 토한다. 어려운 어린이들의 음악 공부를 돕고 피아노 꿈나무를 키우는 일이다. 그는 자신이 받은 혜택을 세상에 다시 돌려주기 위해 2008년 26세 때 랑랑국제음악재단을 만들었다.
지난주에는 페이스북 최고경영자인 마크 저커버그가 천문학적 규모의 기부 약속으로 지구촌을 놀라게 했다. 첫딸에게 보내는 공개편지에서 “모든 부모처럼 우리는 네가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에서 자라기를 바란다”며 450억 달러로 추정되는 페이스북 지분 99%를 기부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는 31세 나이에 거의 전 재산을 내놓겠다고 결심한 이유를 “너무 중요한 문제여서 기다릴 수 없다”며 “젊을 때 시작해 우리 생애 동안 많은 성과를 보고 싶다”고 밝혔다.
젊어지는 기부와 자선 활동을 보면서 스스로에 대해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 세대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매우 많다”는 저커버그의 편지를 되새겨본다. 나 같은 보통 사람들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동참하는 방법을 궁리하다 얼마 전 지인이 보낸 메일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지역 정당 종교 등 각 분야에서 대립과 갈등을 보면서 순수한 비무장지대(DMZ)를 생각합니다. 누구도 무장하지 않고 만날 수 있는 비무장이며 전략이나 계략 없이 공동의 선을 위하여 뭉치는 공간이 있었으면 합니다.”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사회갈등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의 24개국 중 다섯 번째로 높다. 이로 인한 경제적 비용은 연간 최대 246조 원으로 추정된다. 지금 한국 사회가 고민할 것은 분단의 철책선만큼이나 견고해진 이념 빈부 등 갈등이 만든 내면의 철책선이 아닐까 싶다. 거창한 기부가 아니라도 나와 다른 상대를 편 가르고 적개심을 품지 않는 것, 곧 내면의 비무장지대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내일은 달라질 수 있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