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고리 림펜스
얼마 전 독일 대표 신문 ‘디 차이트’에서 시작한 기사 시리즈를 하나 발견했다. 2000년부터 지금까지, 21세기 최고의 소설 15종 ‘카논’을 선정해 소개한 것이었다. 이는 주관적인 선정일 뿐이고 정보성이 거의 없다는 걸 나도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직업병이 심했던 나는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그 리스트를 유심히 살펴보며 여러모로 분석하기 시작했다. “오호, 15권 중에 공쿠르상 수상작이 두 권이나 들어가 있군”, “소설가 15명 중 노벨 문학상 수상자는 세 명이 있네…”.
이런 문학 너드(nerd·괴짜)다운 통계뿐만 아니라, 이 리스트를 검색해 본 결과 몇 가지 만족할 만한 정보도 얻게 된 것 같다. 우선, 선정된 책의 3분의 2가 이미 한국 번역판으로 출간된 사실이 주목할 만하다. 조너선 프랜즌의 ‘인생 수정’, 오르한 파묵의 ‘눈’, 다니엘 켈만의 ‘세계를 재다’, 마리 은디아이의 ‘세 여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 미셸 우엘벡의 ‘지도와 영토’, 존 쿳시의 ‘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아메리카나’ 그리고 로베르토 볼라뇨의 ‘2666’. 한국어판이 아직 나오지 않은 나머지 다섯 작품은 제니퍼 이건의 ‘룩 앳 미’, 나더시 페테르의 3부작 ‘함께 가는 이야기’, 블라디미르 소로킨의 ‘눈보라’, 라이날트 괴츠의 ‘고발’ 그리고 카를 오베 크네스고르의 엄청난 6부작 ‘나의 투쟁’이다.
한국에서 출간된 10종의 작품을 따져 보니 괜찮은 해외 소설을 적극 출간해 온 민음사와 문학동네, 이 두 출판그룹의 경기가 무승부로 끝난 꼴이다(각 4종씩 출판). 나머지 2종은 은행나무와 열린책들에서 발행됐다. 이 4곳의 출판사 주변엔 좋은 해외 문학을 발굴하고자 하는 다른 출판사들도 꽤 있지만, 모두 힘들어하고 있는 것 같다. 온라인서점 판매지수에 의하면 한글판으로도 출간된 작품 10종은 2009년의 메가베스트셀러 ‘1Q84’를 제외하곤 거의 안 팔리는 것으로 나타난다. 헤르타 뮐러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이후엔 한국에 출간된 ‘숨그네’가 반응이 조금 있어 보이지만, 나머지 도서들은 우울하게도 인기가 전혀 없나 보다. 결론은 한국 출판계 입장에선 디 차이트 신문이 선정한 ‘21세기 최고의 소설’ 목록은 낙관적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비관적으로 볼 수도 있다.
낙관적으로 보자면 한국 출판계가 해외 문학을 독자들에게 열심히 소개하고 있음은 틀림없다. 대단하지 않은가. 하지만 반대로 낯설고 대중성이 덜한 해외 문학은 국내에선 여전히 안 팔린다고 할 수 있다. 색다르고 작품성이 강한 해외 문학을 야심 있게 내고자 하는 출판인들, 편집자들 그리고 문학 번역가들에게 보람을 느끼게끔 하는 환경이 됐으면 좋겠다. 좋은 문학작품들을 다양하게 즐길 줄 아는 독자가 많아지면 아름답겠다. “한국 출판 시장의 다양성은 바로 여러분 손에 달렸습니다!”
※벨기에 출신인 필자(39)는 벨기에 명문 루뱅대 법학과와 브뤼셀 KUB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김&장 법률사무소에서 근무하다 현재 출판사 열린책들 해외문학팀 차장으로 근무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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