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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폭력시위 용납 말라”… 단호해진 국민

입력 | 2015-12-11 03:00:00

[한상균 24일만에 체포]경찰버스 잡아끄는 시위행태 질타
“우리가 원한건 폭력 아닌 평화… 종교계도 불법 감싸면 안돼”




한상균 민노총 위원장이 결국 은신처인 조계사에서 자진 퇴거하며 백기를 든 것은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더 이상 거스르기 힘들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국민은 메시지의 옳고 그름 이전에 불법폭력 시위라는 수단과 방법에 동의하지 않았다. 범법자가 종교의 ‘자비(慈悲)’ 뒤에 숨는 것에도 공감하지 않았다. 1980년대 운동권의 낡은 투쟁수단과 ‘우리 편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이 우리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시위 문화에 대한 국민의 생각이 냉정해진 것은 역설적으로 2008년 일명 ‘광우병 시위’ 때문이다. 당시 이명박 정권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면서 광화문에서 남대문까지 촛불을 든 시민으로 가득 찼다. 2008년 5월 24일 시작된 시위는 처음에는 주최 측 추산 1만 명(경찰 추산 3500명) 수준이었지만 그 수는 매일 늘었다. 6월 5∼7일 현충일을 전후한 3일 동안 총 45만 명(경찰 추산 12만 명)이 참가했다. ‘먹거리’와 ‘굴욕협상’이라는 명분에 공감하는 국민이 많았던 만큼 20, 30대 직장인이 폭넓게 참여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평화로운 시위 문화의 본질을 잃어가자 시민의 반응도 달라졌다. 경찰버스를 밧줄로 잡아끌고 도로를 점거하는 것은 물론이고 새벽까지 경찰버스에 낙서하는 일부 과격 시위대의 모습을 보며 “우리가 원한 것은 폭력이 아니다”라는 목소리가 시민 사이에 커지기 시작했다. 시위대의 구호 역시 ‘수입 철회’ ‘협상 무효’에서 ‘이명박 탄핵’ ‘독재 타도’ ‘폭력경찰 물러가라’는 쪽으로 바뀌었다.

비슷한 현상은 이후에도 반복됐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그 문제에 대한 쟁점은 사라지고 대통령 비난 구호를 외치며 청와대 앞으로 진격하는 것이 시위의 정석처럼 자리 잡았다. 2013년 12월 7일 ‘박근혜 정권 규탄’ 비상시국대회도 2만 명이 참여할 만큼 규모는 컸다. 그러나 시위대의 속성을 살펴보면 일반 시민의 참여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민노총, 전국농민회총연맹, 통합진보당 등이 ‘관권부정선거, 공약파기, 민생파탄, 공안탄압’을 이유로 ‘박근혜 퇴진(OUT)’을 외쳤다.

달라진 시선은 4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도 나타났다. 응답자 1005명 중 60%가 시위 중 복면 착용을 금지하는 법안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시위의 민낯을 낱낱이 보여준 TV 생중계도 영향을 줬다. 지난달 14일 오후 4시 53분부터 한 시간 가까이 도심 시위 장면을 직접 보여준 채널A 뉴스스테이션의 시청률은 3.95%(닐슨코리아 전국 유료 가구 기준)를 기록했다. 폭력의 실상이 국민에게 전달되면서 그 이후 한 위원장의 주장이 공감을 얻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민심의 변화를 읽지 못한 종교계 역시 비난을 받았다. 종교계가 여전히 1970년대 유신정권 시대에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화쟁위원회는 한 위원장을 감싸면서도 뚜렷한 대안도 내놓지 못해 ‘종교가 법 위에 서있나’ ‘불법(不法) 감싸는 불법(佛法)’ 등의 비판에 직면했다.

노지현 isityou@donga.com·서정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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