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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원의 정치해부학]문재인의 악마는 1469만표에 있다

입력 | 2015-12-11 03:00:00


박성원 논설위원

사회자: “폭력으로 얼룩진 1차 시위에서는 민노총과 새정치연합 이미지가 중첩됐고… (중략)”

문재인 대표: “정말 이렇게 편파적 질문을 할 수 있는 겁니까? … 질문 자체를 거둬주세요.”

패널: “흔히 노무현 전 대통령의 리더십을 ‘바보 노무현’이라 하는데, 자기 자신을 버리는 정치를 한다는 뜻이죠.”

문 대표: “노 전 대통령의 예를 든 것은 좀 유감스럽고요… (중략)”

8일 관훈토론회에서 새정치민주연합 문 대표는 까칠한 질문이 나올 때마다 질문자를 나무라듯 역정을 냈다. 당내 싸움에 대한 질문이 계속될 때는 “정책 질문은 안 하나요?”라고 힐난조로 말하기도 했다.


어게인 2012+α 필승론

관훈토론은 중견 언론인들이 지정토론자로 나서 초청된 뉴스의 인물을 상대로 날카롭고 성역 없는 질문을 던지는 토론회로 정평이 나 있다. 1987년 대선 때부터 주요 후보들을 거의 모두 토론회에 초청해 가차 없는 질문-답변이 이뤄졌지만, ‘질문할 자유’를 가진 언론인 패널을 타박하는 것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었다.

안철수 의원을 비롯해 비주류 의원들의 대표직 사퇴 요구를 거부하고 ‘마이 웨이’를 가고 있는 문 대표의 당내 발언도 갈수록 강경해지고 있다. 9일 최고위원회의에서는 “한번 결정하면 자신의 뜻과 다르더라도 따라야 한다”며 대표를 더 이상 흔들지 말라고 경고했다. 당무 거부에 들어간 비주류 측 당직자들에 대해서도 “당직을 사퇴하지 않으면서 당무를 거부할 경우 당대표 권한으로 교체할 수밖에 없다”고 일갈했다.

문 대표로서는 혁신전당대회니 뭐니 하면서 대표직 사퇴를 요구하는 안 의원과 비주류들의 탈당 가능성은 높지 않고, 설사 탈당하더라도 그 규모는 호남 일부에 국한될 것이라고 확신하는 듯하다. 주변 인사들은 “호남 일부가 탈당을 하더라도 대선 때는 여당 찍을 수도 없고 누굴 찍겠느냐” “수도권에서는 제1야당의 기호를 달지 않고 누가 내년 총선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나가겠느냐”라고 말한다.

결국 내년 총선까지만 버티면 후년 대선에선 2012년에 얻었던 1469만 표를 다시 모을 수 있는 후보가 문재인밖에 더 있느냐는 얘기다. 문 대표가 8일 관훈토론회에서 “총선에서 실패한다면 자연스럽게 제 정치 생명이 끝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한 것도 이런 인식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친문(친문재인) 의원들은 요즘 문 대표 사퇴론을 2002년 “노무현 후보로는 대선 승리가 어렵다”며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를 강하게 요구했던 비노(비노무현) 의원들의 ‘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와 오버랩시켜 비판한다.


이회창 이인제라는 반면교사

하지만 후보로 공식 선출됐던 노무현과 당대표일 뿐인 어제의 후보 문재인을 동일시하는 건 무리다. 문 대표는 1997년 대선 패배 이후 사실상 차기 권력으로 5년간 떠받들어지다 2002년에도 실패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를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이 전 총재가 기득권을 내려놓고 ‘인(人)의 장막’에서 벗어나 김종필(JP)과도 손잡으라는 고언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1997년 불과 1.6%포인트(39만여 표) 차로 떨어졌던 득표력을 과신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이인제 최고위원은 “나도 1997년 대선에서 얻은 500만 표 믿고 나섰다가 혼쭐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디스’하곤 한다. 문 대표의 변화를 막고 있는 1469만 표의 추억은 그에게 자산이 아니라 악마가 될 수 있다. 안철수 의원이 요구한 혁신전당대회를 “대결하고 분열하는 전대”라며 차버린 게 그 징후다.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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