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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권순활]삼성과 ‘바퀴 달린 제품’

입력 | 2015-12-11 03:00:00


이병철 삼성 창업자는 걸출한 경영자였지만 ‘조미료 전쟁’에서는 참담한 패배를 맛봤다. 삼성은 1970년대 조미료 시장을 선점한 미원(현 대상)에 맞서 미풍과 아이미 같은 제품으로 도전했지만 미원의 아성을 뚫지 못했다. 이병철이 “세상에서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자식과 골프, 그리고 미원”이라고 털어놓았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삼성을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으로 키운 이건희 회장의 가장 큰 실패는 자동차사업이었다. 자동차 마니아였던 그는 1995년 3월 삼성자동차를 설립해 이듬해 11월 부산 신호공장을 준공했지만 악재가 겹쳤다. 지반이 약한 부산 공장에 지나치게 많은 투자비가 들어간 데다 공장이 완공된 지 1년 만에 터진 외환위기로 경영난이 심해졌다. 결국 삼성은 2000년 프랑스 르노에 삼성차를 넘기고 손을 뗐다. ‘총수 관심사업’이었던 자동차사업 실패는 삼성과 이 회장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삼성 내부에서는 ‘바퀴 달린 제품은 안 만든다’는 불문율도 생겼다.

▷삼성전자가 9일 조직 개편에서 자동차 전자장비(전장·電裝) 사업을 총괄할 ‘전장사업팀’을 신설했다. 삼성차 철수 후 15년 만이다. 자동차 전장은 차량 속에 들어가는 모든 전기·전자·정보기술(IT) 장치를 말한다. 스마트카에서 차체만 빼고 다 만들겠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포화 상태에 이른 전자산업의 새로운 돌파구가 전장이기도 하다. 삼성전자 전문 경영인 중 최고위직인 권오현 부회장 직속으로 전장사업팀을 배치한 것은 이번 결정의 무게감을 보여준다.

▷이재용 부회장이 주도한 삼성의 자동차 전장사업 진출은 독자적인 ‘자율주행 완성차’를 만든다는 미국 애플과 구글의 전략과는 차이가 있다. 삼성도 완성차 시장에 다시 뛰어들 생각은 없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자동차와 전자의 산업별 경계가 빠른 속도로 허물어지는 현실에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 속단하긴 어렵다. ‘이재용 삼성’ 체제가 출범한 뒤 일각에서 ‘축소 경영’ 우려도 제기되던 시점에 나온 이번 결정이 한국경제의 새로운 먹거리를 만들어내는 데 기여하길 바란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