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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 목청 높이던 韓, 조사 내내 묵묵부답

입력 | 2015-12-12 03:00:00


평온 되찾은 조계사… 동짓달 초하루 법회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11일 동짓달 초하루 법회가 열리고 있다. 25일간 은신해 있던 한상균 민노총 위원장이 퇴거한 이후 조계사는 예전의 평온함을 되찾았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한상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위원장(53)은 11일 이틀째 이어진 경찰 조사과정에서 시종 묵비권을 행사했다. 전날 경찰 체포에 앞서 기자회견을 갖고 장황한 ‘연설’을 하던 모습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서울지방경찰청 불법 폭력시위 수사본부는 지난달 14일 제1차 민중총궐기 투쟁대회 당시 불법 폭력시위를 주동하는 등 올해 불법 시위 11건과 관련해 특수공무집행방해, 특수공용물건손상 등 8가지 혐의로 한 위원장에 대해 이날 검찰에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검찰도 곧바로 법원에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영장실질심사는 12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다. 경찰은 ‘다중이 집합해 폭행 협박 또는 손괴를 한 자’에게 적용하는 형법상 소요죄는 구속영장이 발부되면 조사를 거쳐 혐의 추가 여부를 검토하기로 했다.

경찰은 이날 오후 2시경 민노총 법률원 조세화 변호사 입회하에 한 위원장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했다. 경찰은 이틀간 300여 개 항목에 대해 질문했다. 하지만 한 위원장은 3차례로 나뉘어 진행된 8시간가량의 조사 내내 인적사항 외에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수사본부 관계자는 “유치장 내 조사실이 따뜻한데도 모포를 덮고 웅크리거나, 의자에 등을 기대고 천장만 바라봤다”고 전했다. 한 위원장은 전날처럼 식사를 거부하고 구운 소금과 물만 섭취했다.

법조계에서는 체포 전 기자회견에서 적극적으로 억울함을 호소했다가 정작 경찰 조사에서 진술을 일절 거부하고 있는 한 위원장의 모습이 과거 주요 공안·정치 사범들과 판박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은 2013년 내란음모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게 되자 “‘댓글 사건’으로 궁지에 몰린 국가정보원이 여론을 돌리기 위해 날조한 사건”이라며 묵비권을 행사하고 진술조서에 서명조차 하지 않았다. 올해 8월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유죄를 확정받아 수감 중인 한명숙 전 국무총리는 “‘정치 검찰’의 표적 수사”라며 재판 중 검찰의 피고인 신문에도 직접 답변을 거부해 공판이 파행됐다.

진술거부권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이기 때문에 유무죄 판결에 영향을 미치진 않는다. 하지만 피의자의 진술 외에 객관적 증거가 충분하다면 묵비권 행사가 반드시 피의자에게 유리한 결론을 이끌어내는 데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지난해 5월 세월호 집회 현장에서 하이힐로 경찰을 때려 상해를 입힌 혐의(공무집행방해)로 소환된 일명 ‘하이힐녀’ 진모 씨(48·여)도 경찰 조사에서 진술을 거부하다가 동영상 등 증거자료를 확인한 뒤 범행을 인정하고 선처를 호소했지만 법원은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한 재경지법 판사는 “재판부는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관련자 진술이나 영상 등 객관적 증거를 따져 유무죄를 판단하기 때문에 진술 거부가 피의자나 피고인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대한불교조계종 화쟁위원회 위원장인 도법 스님은 11일 기자간담회에서 한 위원장을 “이질적인 사람”이라며 “기존의 삶과 사고방식이 너무 다른 사람들이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한 공간(조계사)에 있게 되니 당연히 서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고 말했다. 도법 스님은 “사회 현안이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절망스럽게 만드는 문제라면 당연히 종교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훈상 tigermask@donga.com·변종국·권오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