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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형’이라 부르고 싶은 유쾌한 그녀의 치명적 매력

입력 | 2015-12-12 03:00:00

◇보건교사 안은영/정세랑 지음/280쪽·1만3000원·민음사




‘학원 명랑 미스터리 소설’이라? 출판사가 홍보용으로 내세운 잡다한 장르 혼종인가 싶지만 ‘보건교사 안은영’에선 가능한 표현이다. 주인공은 사립 M고의 보건교사 안은영. 그런데 이 여성이 보통이 아니다. 진짜로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는 퇴마사로 ‘투잡을 뛴다’. 근무지도 맞춤한 것이, M고는 일찍이 실연한 젊은이들이 자살한 연못을 매립한 부지에 설립됐다. 그만큼 상처받은 영혼이 많은 곳이다.

정세랑은 장르문학 잡지 ‘판타스틱’에 소설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작가다. 창비장편소설상을 받으면서 순문학과 장르문학을 넘나들던 정 씨가 이번엔 온전한 장르소설을 썼다. 작가 자신이 “오로지 쾌감을 위해 썼다”고 밝힌 터다.

퇴마사라는 직업을 생각하면 ‘으스스함’ ‘비장함’ 같은 단어를 떠올리게 되지만 소설의 분위기는 발랄하다. 안은영은 민물고기 귀신을 잡으려고 장난감 총에 비비탄을 넣어 쏘아대고, 자살한 학생을 삼킨 용 귀신과 싸울 때는 과학실험용 물로켓을 쓴다.

여러 사고를 치고 다니는 남학생 둘의 ‘균형을 깨뜨리는 기운’을 매듭지어 보겠다며 전통매듭공예부 선생님한테 매듭 특강을 받는다. 남학생들 기운의 근원인 겨드랑이 털을 매듭짓는 부분에선 ‘빵 터지지 않을 수 없다’.

캐릭터가 매력적이다. 꽃무늬 원피스와 꽃무늬 지갑에 학교에선 통굽 실내화를 끌고 다니고 피곤한 날엔 너무 밝은 색 립스틱만 바르고 나오는 여자. 악귀와 혼령을 물리치는 일엔 스타킹이 찢어지도록 덤비는 여자. 이 여자 안은영이 한문교사 겸 학교 설립자의 손자 홍인표와 함께 귀신에 맞서면서 ‘썸 타는’ 과정도 유쾌하다. “소설이 웹툰이나 영화보다 더 재미난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문장만이 포착할 수 있는 감각은 따로 있다고 믿는다”고 작가는 말했다. ‘보건교사 안은영’의 문장 감각은 도드라진다. 그리고 재미도 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