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자인 헨리 캐번디시(1731~1810), 양자역학의 대가이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폴 디랙(1902~1984). 영국인 물리학자라는 것 외에 두 사람은 모두 ‘기이한’ 인물로 유명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강박증에 가까울 정도로 매사에 완벽함을 추구했다는 점, 극도로 수줍어하는 성격으로 사교성이 부족했다는 점이 그렇다. 이 때문에 두 사람은 학계에서는 존경받았지만 사회적으로는 이상한 사람들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스티브 실버맨의 저서 ‘신경족(Neurotribes)’에 의하면 이들은 이상한 사람이 아닌 자폐증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정보통신(IT) 관련 기사를 주로 다루는 잡지 ‘와이어드’의 기자인 실버맨은 2001년 알래스카로 가는 크루즈에서 자기 딸이 자폐증이 있다고 고백한 유명 컴퓨터 언어 개발자를 만났다. 이후 실버맨는 다른 인터넷 개발자의 조카도 자폐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우연에 흥미를 가진 그는 미국 실리콘 밸리의 IT 종사자들 자녀들 중 많은 수가 자폐증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흔히 ‘너드(nerd)’라고 불리는 IT 천재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사회생활에는 극도로 서투르다는 것이었다. 너드들이 서로 결혼해 자녀를 가질 경우 이들의 자녀도 자폐증 관련 유전자를 가질 가능성이 많지 않을까?
그는 본격적으로 자폐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는데, 그 결과물이 바로 ‘신경족’이다. 이 책은 11월 2일 논픽션계의 부커상이라 불리는 새뮤얼 존슨상을 수상했다. 과학 분야 책이 이 상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반면 미국 유명 신경 전문의 레오 카너는 자폐증을 정신병의 일종으로 치부하며 자폐아는 정상적 생활을 꾸려갈 수 없다고 단정했다. 또 그는 자폐는 영아기에 부모와 깊은 유대 관계를 맺지 못하는 아이에게서 나타나기 쉽다고 주장했다.
실버맨은 자폐의 역사와 자폐에 관한 여러 이론을 소개하지만 이에 대한 평가는 자제한다. 그가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폐는 이런 것이다’라는 정의나 ‘자폐를 어떻게 고칠 것인가’라는 해결책이 아니다. 책 제목이 시사하듯 ‘자폐증을 앓는 사람들이 특별한 신경 계통의 변이를 갖게 된 사람들에 불과하다는 것’을 대중에게 알리려 한 것이다. 그는 새뮤얼 존슨 상 수상 뒤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 책으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자폐증을 앓는 사람도 사회에서 충분히 제 역할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런던=안주현 통신원 jahn8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