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탈당]제1야당 분열사 살펴보니
○ 1996년 총선, DJ 위기 봉착
1992년 대선 패배로 정계 은퇴를 선언한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1995년 6월 지방선거 이후 정계 복귀를 선언했다. 1996년 15대 총선을 8개월 남겨 두고서였다. DJ는 1995년 9월 신당인 새정치국민회의를 만들었다. 기존 제1야당인 민주당에서 DJ계 55명이 집단 탈당해 합류했다. DJ는 야권 분열이라는 비판을 들었다.
게다가 1987년 민주화 이래 총선에서 처음으로 서울 다수당의 위치를 여당(당시 신한국당)에 내줬다는 점에서 야권의 충격은 더 컸다. 직전인 14대 총선(1992년)에서는 민주자유당 이름으로 서울 44석 중 16석에 그쳤던 신한국당은 15대 때 서울 47석 가운데 27석을 가져갔다. 야권 분열이 만든 1여 3야(국민회의, 민주당, 자민련) 구도의 덕을 톡톡히 본 것이다.
1987년 대선 당시 야권 분열의 책임 논란에 시달렸던 DJ에게 1997년 대선에 나설 자격이 없다는 비판이 거셌다. 그럼에도 DJ가 대선후보로 나설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당시 국민회의 주요 당직을 맡았던 새정치연합의 한 의원은 “호남의 지역 기반이 워낙 튼튼했고, DJ를 대체할 만한 다른 주자가 없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 2000년 총선, 민국당 초라한 성적표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야당인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은 ‘공천 학살’이라고 불린 공천 개혁을 단행했다. 이 결과 당시 민정계 김윤환 이세기 한승수, 민주계 신상우, 그리고 이기택 의원이 ‘숙청’됐다. 이에 불복한 김, 한, 신 의원 등은 조순 전 서울시장, 이수성 전 국무총리 등과 함께 민주국민당(민국당)을 창당했다. 민국당은 16대 총선에 참여했지만 강원 춘천에서 한 의원이 당선됐고 비례대표 1석을 얻는 데 그쳤다. 당의 간판을 유지할 수조차 없는 참패였다. 분열된 제1야당에서 갈라져 나온 ‘아류’ 야당의 한계이기도 했다.
○ 총선 아닌 대선 교두보 마련?
과거가 미래에도 반드시 반복된다는 전제는 성립하지 않는다. 다만 안 의원이 추진할 새로운 정치세력이 내년 총선에서 제1야당 자리를 차지하기도, 문 대표가 끌고 갈 새정치연합이 제1당이 되기도 어려울 거라는 게 중론이다.
공동 창업한 새정치연합이라는 굴레를 벗어난 안 의원도, 당내 ‘홀로서기’를 고수할 문 대표도 이 같은 현실에 대한 부담감이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안 의원이 탈당이라는 초강수를 둔 것은 문 대표가 새정치연합을 ‘문재인 당’으로 만들려 한다는 판단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그 경우 자신이 2017년 제1야당의 대선후보로 지명되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는 얘기다. 문 대표도 안 의원을 붙잡아 그가 대변하는 중도로 외연을 넓히는 것보다는 ‘순혈’ 친노·운동권으로 당을 바꿔놔야 대선경선 가도에 더 유리하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거라는 분석이 나온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