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심규선 칼럼]박유하 교수와 야스쿠니 폭발, 그리고 언론

입력 | 2015-12-14 03:00:00

한일 수교 50년인 2015년
양국 갈등의 원인을 논할 때, 언론책임론도 빠지지 않았다
선뜻 수용하긴 어렵지만 두 나라 언론은 너무나 오래
선수가 아닌 심판을 자처하며 자국 보도에만 관대하지 않았나
한일 보도의 프레임 탈피는 의지와 전문성이 해답일 듯




심규선 대기자

한일 관계가 악화하면서 2, 3년 전부터 등장한 것이 언론책임론이다. 내셔널리즘을 부추기는 양국 언론이 정치권만큼이나 문제라는 비판이다. 기자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국 언론의 일본 관련 보도는 예전보다는 성숙해졌으며, 추수적으로 갈등을 보도한 언론에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수용하기 어렵다는 반론을 펴왔다.

그러나 한일 수교 50년을 맞아 한국과 일본에서 열린 여러 세미나, 심포지엄, 토론회 등에서 언론책임론은 빠지지 않았다. 특히 학계가 그런 주장을 많이 한다. 이는 한일 갈등이 길어질수록, 악재가 늘어날수록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

언론이 어느 정도 자국 중심의 보도를 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고 본다. 특히 한일 보도는 그런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언론책임론은 그런 분위기의 산물이다.

박유하 세종대 교수가 ‘제국의 위안부’라는 책으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일만 해도 그렇다. 일본 언론은 한국 언론이 ‘학문의 자유’를 침해한 사건으로 강하게 비판하지 않는 데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기자는 일본 매스컴의 서울특파원들로부터 똑같은 질문을 여러 차례 받았다.

이렇게 대답했다. “과거의 경위를 무시하고 지금의 문제로만 보는 것은 곤란하다. 위안부 문제는 한국에서 이의를 제기하기가 매우 어려운 사안이다. 박 교수의 책은 10년 전만 하더라도 쓰기 힘든 책이다. 학문의 자유를 침해한 것과는 별도로, 한국 언론이 책 내용을 문제 삼지 않는 것 자체가 예전보다는 훨씬 성숙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한국의 위안부 문제는 북한의 일본인 납치 사건과 구조가 비슷하다. 일본에서는 납치 문제가 ‘성역’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정치권이든, 언론이든 사실 확인과 피해 회복에 앞서 북한과 관계 개선에 나서라고 주장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국가범죄이고, 인권 문제이며,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분만 기다리고 있는 것도 닮았다.” 일본 언론이 이런 주장을 수용할지는 그들의 판단이지만, 적어도 이해는 해야 한다고 믿는다.

한국도 일본 언론에 대한 오해가 있다. 일본 언론이 야스쿠니 폭발음 사건의 용의자를 공개한 것과 관련해서다. 일본 언론은 이 정도 사건의 용의자라면 누구나 실명과 얼굴을 공개한다. 한국 언론은 용의자의 인권 보호 차원에서 실명과 얼굴을 가리지만, 일본 언론은 거꾸로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는 것이 수사기관의 월권이나 비리를 막는다고 생각한다. 혐한 분위기를 부추기려 일부러 신원을 공개했다는 주장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야스쿠니 폭발음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기도 전에 요코하마의 한국총영사관에 일본 극우단체가 인분 상자를 투척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명백히 야스쿠니 폭발음 사건에 대한 보복 범죄다. 한국 언론은 이 사건을 어떻게 보도할 것인가.

폭발과 투척 사건은 매우 미묘하다. 그렇지만 양국 정부는 두 사건을 비호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적극적으로 수사해 법에 따라 처벌하면 된다. 국민감정에 직접 영향을 주는 언론이 더 중요하다. 추측성 보도와 상대국을 자극하는 코멘트를 자제해야 한다. 두 사건은 ‘외교 문제’가 아니라 ‘저널리즘 문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요즘 한일관계를 논할 때 학계는 아름다운 구름을 그리고, 관료는 구름에서 내리는 비를 걱정하고, 언론은 비 때문에 생긴 진흙탕에서 일해 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언론은 앞으로도 지상을 떠나지는 못할 것이다. 지금, 옆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비록 흙탕물이 튀더라도 사실대로 전하는 게 언론의 본분이기 때문이다.

다만 진흙탕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진흙탕을 빠져나오려면 한일 양국 언론 모두가 첫째는 정확성, 균형감, 일관성, 방향성이라는 저널리즘의 원칙을 회복하고, 둘째는 한일관계를 특수 관계가 아니라 갈등도 있고 명암도 있는 보통 관계로 이해하면서, 셋째는 글로벌한 시각에서 양국 관계를 부감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게 가능할까. 올해 한일 언론인들끼리, 또한 도쿄특파원을 지낸 한국 언론인들끼리 몇 차례 만나 고민을 털어놓고 다짐도 해보는 기회를 가졌다. 그래서 기자는 멋대로 올해를 각자의 길을 걸어왔던 한국 언론이 자발적으로 한일 보도에 대해 문제의식을 공유한 원년이라고 규정하고 싶다. 의지와 전문성을 갖춘다면 희망을 가져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너무 빠른 희망인지는 모르겠으나.

심규선 대기자 ksshim@donga.com